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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정신
사무엘 하 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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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산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다스림을 오늘 경험하지 못하면 결국 복음 전도의 효과는 없습니다. 이뤄지더라도 반쪽 복음입니다. 새가 두 날개로 날 듯 복음은 제사장 제도와 선지자 정신에 터합니다. 구속의 은총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당신의 뜻이 편만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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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하고 치열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현실에 적용하며 그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려는 거룩한 의지를 가진 그리스도인 위에 주님의 함께하심을 빕니다.
솔로몬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면서 종교의 지형은 제사장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속죄 수단으로서 제사 제도와 그 직임은 매우 중요합니다. 속죄의 제사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점과 제사장이 종교의 중심이 되어 권력화하였다는 사실은 다른 문제입니다. 구약 성경이 말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속죄는 하나님 나라 구현의 방편입니다. 그런데 구약은 그 점에서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도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가 쓴소리를 합니다. 나단의 말을 들은 다윗이 이야기 속 부자에게 분노하였습니다(삼하 12:5).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그 어린 암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합니다.”(삼하 12:5~6, 새번역) 다윗에게서 자기 의와 보편적 정의의 괴리를 발견합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습니다. 자신을 객관화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난 사람도 귀하고, 든 사람도 좋지만, 무엇보다 된 사람이 좋습니다.
이미 다윗의 권력이 굳어져 단단해진 시점이라 다윗을 찾아가 쓴소리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다윗이 분노할 때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삼하 12:7)라는 지목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선지자란 그런 사람입니다. 권력 앞에 주눅 들지 않고 쓴소리를 과감히 할 수 있는 사람, 일신일가의 영달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는 사람입니다.
사각형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구속을 강조한 나머지 구속이 기독교 가르침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구속이 하나님 나라의 출발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왜곡, 또는 무시합니다. 영혼의 구원, 즉 죽어서 천당 가는 이야기만 하지 전인적 구원, 이제 여기에서 펼쳐질 하나님의 다스림을 외면합니다. 제사장 종교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피안의 세계로만 한정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영원은 시간의 무한대한 연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이 자리의 시간입니다. 종말론적 구원의 시제는 현재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산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다스림을 오늘 경험하지 못하면 결국 복음 전도의 효과는 없습니다. 이뤄지더라도 반쪽 복음입니다. 새가 두 날개로 날 듯 복음은 제사장 제도와 선지자 정신에 터합니다. 구속의 은총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당신의 뜻이 편만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영혼 구원, 그 이상임을 믿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 나라의 시작임을 알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가치와 질서를 따르겠습니다.
찬송 : 279 인애하신 구세주여 https://www.youtube.com/watch?v=vwfxMylwtZI
2022. 10. 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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