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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c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1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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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노믹스49] 2세 경영인 = 이삭
김민홍 주간<기독교> 2021.08.25
권력과 돈은 형제간도 피바람
부친 생존 때 후계 매듭지어야
권력은 나눌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도 권력을 두고 싸운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갈등도 그 단초는 권력이다. 돈도 그렇다. 피를 나눈 형제끼리 돈을 두고 목숨까지 거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 간 법정소송은 예사다. 국내 굴지의 기업들은 죄다 형제끼리 돈 싸움 했다. 삼성도 2세 승계 과정에서 그랬다. 장남과 3남은 법정까지 갔다. 현대는 왕자의 난이라는 큰 홍역을 치렀다. 수천억 자산가나 대기업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남긴 유산은 형제간 돈 싸움으로 얼룩졌다.
재벌기업 중 LG그룹은 후계자 싸움에서 한발 비켜선 그룹이다. 여기엔 LG그룹 회장의 인화정신이 녹아있다. 사실 LG그룹은 재산 분규의 폭탄을 안고 있었다. 그것은 LG그룹이 1950년대 락희화학과 금성사 등 창업 시절부터 경남 진주의 두 가문이 힘을 합쳐서 발족했기 때문이다. 구자경 회장은 두 가문이 합쳐진 LG그룹의 2세 경영인이다. 구자경 회장은 한 치의 잡음이나 갈등 없이 25년간 LG그룹을 이끌었다. 70세가 되자 허준구 회장의 가문을 분리해 GS그룹을 독립시켰다. 동시에 구 회장은 아들 구본무 회장에게 3세 경영을 맡기고 은퇴했다. 그는 서울에 머물지 않고, 물리적으로 아들과 떨어졌다. 물론 경영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GS그룹 분리와 또 3세인 구광모 회장 승계과정에서 재산 싸움은 전혀 없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고 후처를 맞아들인다. 아브라함 가족의 본부는 헤브론이다. 사라도 여기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후처와 생활은 다른 곳으로 옮겼다. 헤브론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진 블레셋 땅에 기거했다. 이삭은 헤브론을 중심으로 남동쪽으로 브엘라해로이와 그랄 등지로 이동하면서 지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떨어져 살았다.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가 낳은 자손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 6형제다. 이들은 아랍민족의 조상들이 됐다. 그두라 아들 중 가장 뛰어난 후손은 미디안이다. 미디안 자손은 번창했고 소유한 땅마저 미디안이라고 이름 지었다. 모세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었다. 한때 가나안 땅 실력자였다가 아시리아 시대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아브라함에게는 하갈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엘도 있다. 그의 후손도 12 족속으로 아랍민족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수차례에 걸쳐 받은 약속이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언약이다. 후처 그두라와 이집트 첩인 하갈을 통해서 얻은 아들들이 이 언약을 실천하는 후손이 된 셈이다. 이래저래 아들이 많아 아브라함은 후계자 선정에 골머리를 앓았을 법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조금도 잡음을 남기지 않았다. 하나님과 약속을 충실하게 지킬 수 있는 믿음의 자식인 이삭에게 모든 재산을 넘겼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 후계자로 삼았다. 아브라함은 후처의 자식들을 멀리 동쪽 땅으로 보냈다. 이삭 주변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한다. 후계자 싸움을 벌이지 않도록 단단하게 조치한 셈이다.
아브라함은 재산을 두고 후계자싸움이 일 것으로 내다봤다. 모든 재산은 적장자 원칙에 따라 이삭에게 모두 주었다. 그것도 죽기 전에 정리했다. 더욱이 이삭 이외 자식은 본부 헤브론에서 멀리 떨어져 살도록 만들었다. 아브라함 자신도 이삭과 떨어진 블레셋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다. 아브라함의 탁월한 후계전략이다.
문제는 후계 구도에 있다. 기업은 후계 구도를 사전에 치밀하게 진행해야 한다. 기업의 공익성과 개인 및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커서다. 창업주가 2세 경영 구도를 장기적인 전략아래 치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싸움판을 물려주게 된다. 아브라함의 지혜나 구자경회장 후계 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조선왕조 태종 이방원의 후계자 전략도 본받을 만하다. 태종은 세 아들을 두었다. 양녕, 효령, 충녕대군이다. 태종은 후계자로 충녕을 점찍었다. 적장자인 양녕대군은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해서 이른 시기에 후계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효령은 이를 눈치 채고 충녕을 위해 머리를 깎고 불문에 들어간다. 이방원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충녕(세종)을 보위에 올려두고 아들 주변을 정리했다. 그는 한양에 머물면서 스스로 자신의 손에다 피를 묻혔다. 세종을 위해서였다. 먼저 세종의 외삼촌 4명을 모두 죽여 외척 세도의 싹을 잘랐다. 이방원은 세종의 장인을 걸림돌로 보았다. 여기다가 이방원은 집현전을 설치한다. 세종 시대의 싱크탱크 기능을 하도록 했다. 조선왕조가 6백 년간 장수 왕조를 이어갈 수 있었던 토대는 이때 만들어졌다. 왕조 초기 후계자를 둘러싸고 피바람이 일면 왕권은 허약해지고 결국 나라는 망한다. 태종 이방원은 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지혜 그리고 태종의 과단성, 구자경 회장의 경영전략은 공통점이 있다. 2세 후계 구도는 아버지가 생존할 때 완벽하고 치밀한 계획 아래 끝내야 한다는 점이다. 돈 앞에서 인간은 시험에 들고 쉽게 허물어진다. 한 푼이라도 투명하고 확실하게 아버지가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
김민홍/본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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