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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받는 예수

누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89 추천 수 0 2022.10.13 13: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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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4:1-13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대구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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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보기 : https://youtu.be/7SE4ObC5h1U 
성경본문 : 누가복음 4:1~13 
시험받는 예수
눅 4:1~13, 사순절 첫째 주일, 2022년 3월6일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 있는 회당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기 전에 마귀에게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다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광경이 특이합니다. 눅 4:1절에 따르면 당시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했다고 합니다. 세례를 받은 직후이기 때문이겠지요. 40일간 광야에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예수의 소명감이 절정에 도달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마귀는 성령의 대적자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했다면 마귀가 얼씬하지 못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성령과 마귀, 또는 성령과 악령은 우리 눈에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성령에 충만한 순간은 오히려 마귀의 미끼에 걸려들 순간이기도 합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가장 불안한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살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시험
 
마귀는 세 가지로 예수를 시험합니다. 당시에 예수님은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근처에서 발에 채는 돌덩이도 빵처럼 보일 상황입니다. 그 순간에 마귀는 예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Υ??? το? Θεο?)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ρτο?)이 되게 하라.”(눅 4:4)라고 말합니다. 에덴 동안에서 최초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하는 뱀의 말이 연상됩니다. 이 문장에서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과 ‘떡’(밥)입니다.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이, 또는 ‘사람의 아들’(Υ??? το? ?νθρ?που)이라는 자의식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예수님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복음서에 오병이어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예수가 인간의 먹을거리, 굶주림의 문제, 부의 양극화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문제에 집착하게 하는 세력이야말로 마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마귀의 목소리를 매일 듣습니다. 그 목소리가 너무 강력해서 진리는 파묻힙니다. 교육과 예술과 문학과 의료, 심지어 종교까지도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마귀의 유혹에 완전히 이끌립니다.
 
예수는 4절에서 신 8:3절의 일부를 인용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라고 대답했습니다. 병행구인 마 4:4절은 신 8:3절 전체를 인용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뒤로 이어지는 마귀의 나머지 시험에 대한 예수의 답변도 모두 신명기를 인용한 겁니다. 신명기는 고대 유대인의 광야 시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먹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런 광야 생활 40년을 암시합니다. 그들 조상은 광야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씻지도 못했습니다. 매우 열악한 생존 조건에서 살았습니다. 먹을거리는 ‘만나’ 정도입니다. 만나는 그야말로 초근목피에 해당합니다. 그런 생존 조건을 만족스럽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중간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나일강 유역의 기름진 고센 지역으로 돌아가자고 선동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거의 내전이라 불릴만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그런 열악한 광야 상황에서도 고대 유대인은 하나님의 은총을 더 깊이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고,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절이 그들에게는 영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절이었습니다. 신 8:3절을 인용하면서 예수는 조상들의 그 광야 시절을 기억했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배부르고 등이 따뜻해야만 생명을 얻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숭배가 시대정신으로 자리한 21세기 오늘날에도 예수의 이 말씀에 설득력이 있나요?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 그런 경험을 하시나요? 평생 설교를 전업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저는 이런 대목을 만날 때마다 멈칫거립니다. 자본주의 원리에 충실한 세상 사람들만이 아니라 재물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는(마 6:24) 예수의 아포리즘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도 돈벌이에 ‘몰빵’하는 이 시대 정신 앞에서 무기력하지 않습니까. 집값 파동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떨어진 가난한 사람들도 많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기의 재산을 지키려는 부자들도 많지 않습니까. 교회에서도 건전한 부자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빈곤했던 40년 광야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만 있으면 생명을 얻는다는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각을 바꾸는 게 바로 회심입니다.
 
먹을거리와 연관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예수의 말씀이 ‘주기도’에 나옵니다. 주기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벼락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트코인 값이 뛰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소박하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겁니다. 이 말은 최소한 일용할 양식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명령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일용할 양식만으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용할 양식이 없는 사람은 일단 일용할 양식을 얻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런 일을 도우라고 대통령도 뽑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만으로 행복할 능력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없나요? 냉장고에 온갖 먹을거리가 들어찼습니다. 보통 넘치는 게 아니라 과잉입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인 먹을거리를 찾습니다. 소위 ‘먹방’ 유튜브가 인기를 끈다고 합니다. 미친 짓 아닌가요? 그걸 행하는 사람을 제가 비난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시대사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현대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섭식장애를 앓는다고 해도 잘못이 아닙니다. 절간이나 수도원 식사처럼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두세 반찬만으로 먹는 즐거움을 황홀하게 느끼는 분들이 여기 계실 겁니다. 다른 재물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드는 기술에 혹하는 게 아니라 일용할 양식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삶의 태도가 우리를 살립니다. 그런 태도가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두 번째 시험
 
두 번째로 마귀는 예수에게 천하만국을 보여줍니다. 그의 제안이 재미있습니다. 6, 7절이 이렇게 전합니다.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여기서 언급된 권위(?ξουσ?α)와 영광(δ?ξα)은 신성에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예수 당시에는 이 단어가 생살여탈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로마 황제에게 붙여졌습니다. 복음서는 예수의 본질을 가리킬 때 엑수시아와 독사를 언급합니다. 위 구절에 따르면 마귀는 권위와 영광을 자기가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기 권위와 영광에 매몰된 최고 정치 권력자나 최고 경제 권력자는 마귀에게 종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에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공격했습니다. 자기 권위와 영광에 근거한 힘자랑 아니겠습니까. 세계 모든 사람이 걱정하던 일이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 자체의 악마적 속성으로 인해서 엄청난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아무리 거룩한 전쟁이라고 해도 전쟁 자체가 악마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승리한 전쟁보다는 값비싼 평화가 더 소중하다는 말에 저는 동의합니다. 남북관계에서도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전쟁은 말아야 합니다. 20년 전에 미국이 벌였던 이라크 전쟁도 그렇고, 이번에 푸틴이 일으킨 전쟁도 권위와 영광을 주겠다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게 아닐까요.
 
이런 마귀의 유혹을 웬만해서는 거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권위와 영광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마귀에게 절합니다. 지금 20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온 이들 중에서도 마귀에게 절할 준비를 마친 사람이 있을 겁니다. 준비를 마친 정도가 아니라 이미 절했을 겁니다. 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겁니다. 여러분은 누가 지금 마귀에게 절하는 후보이고, 머뭇거리는 후보이고, 거절하는 후보인지 눈에 보이시나요? 모두 한통속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국가 차원만이 아니라 가정이나 친구 모임이나 교회 모임처럼 인간이 모이는 곳에서는 이런 욕망이 크게 작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권위와 영광이 인간에게는 아주 매혹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가 왕이 되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목사 역시 교회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왕이 되려는 욕망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권위와 영광을 손에 쥔 왕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누군가는 기업 총수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 그런 일들은 모두 마귀의 일이니 그리스도인이 멀리할 수는 없지 않으냐,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고, 기업 총수가 될 수도 있고, 검찰 총장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방관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다만 자기 권위와 자기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의 차원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거의 수도승처럼 자기를 성찰해야만 합니다. 그래도 인간이기에 나락에 떨어질 위험성이 큽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그냥 평범한 소시민으로 사는 게 지혜로운 겁니다. 지난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지도자가 그런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자기도 망했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했습니다.
 
예수는 마귀에게 신 6:13절을 인용하여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권위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여러분은 이미 찾았을 겁니다. 세 번째 시험을 확인하면 그 대답이 더 분명해질 겁니다.
 
세 번째 시험
 
마귀는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시편 91:11, 12절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귀도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논리입니다. 눅 4:9~11절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이 대목에서도 첫 번째 시험과 마찬가지로 마귀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있나? 없지? 왠지 불안하지? 그렇다면 그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해야 하지 않느냐? 그런 증거도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느냐?’고 예수를 자극합니다. 그럴듯한 주장입니다. 마귀는 늘 그럴듯한 논리를 제시합니다. 예수 주변에서도 그렇게 질문한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마 12:38절 이하를 따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표적을 보여주십니다. 모세가 유대 민족을 애굽에서 끌어낼 때 나타난 열 가지 재앙이 바로 표적이었습니다. 광야에서는 더 많은 표적이 따랐고, 선지자들에게도 그런 표적이 흔히 나타났습니다. 시 86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시 86:17)
 
표적 신앙 자체를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표적 신앙을 승리주의 신앙으로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두 발을 딛고 세상에서 살아야 하니 승리하고 싶다는 심정을 이해 못 할 건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태도입니다.
 
마귀의 아주 그럴듯한 제안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떤 대답을 하셨을까요? 궁금합니다. 제가 보기에 세 번째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입니다. 신 6:16절을 인용한 대답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시험하는 게 아니라 삶의 태도가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겁니다. 만약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뛰어내리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신앙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데서만 성립한다는 사실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면 이미 신앙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무조건 열광적으로 믿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은 광신입니다. 광신을 제대로 된 신앙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험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가 3층 난간에서 아래에 있는 아빠에게 소리를 칩니다. “아빠, 내가 여기서 뛰어내릴 테니 받아주세요. 아빠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요.” 우리는 인생을 이런 어린아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는지 모릅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뒤틀렸냐고,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허락해야만 당신을 믿을 수 있다고 아우성을 치는지 모릅니다. 정말 바보입니다. 이미 충분한 것을 허락하셨는데도 그게 왜 충분한지를 모르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사람끼리도 서로 시험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남편은 아내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시험합니다. 어느 정도로 인생이 잘 풀려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아내나 남편이 서로 얼마나 잘해줘야 그를 시험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형편에서 살든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여러분의 인생 자체를 시험하지 마십시오. 마귀에게 시험은 받을지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시험하지는 마십시오. 우리와 똑같이 마귀의 시험을 받았던 예수님이 내린 결론을 다시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살릴 겁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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