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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할 것 없는 기념비
사무엘하 18:1~18
엄혹하고 치열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현실에 적용하며 그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려는 거룩한 의지를 가진 그리스도인 위에 주님의 함께하심을 빕니다.
한 노인이 국경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말을 한 마리 길렀는데 어느 날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이웃이 위로의 말을 전하자 노인은 ‘사람 일은 알 수 없다’며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아냐’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달아났던 말은 암말 한 마리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노인의 말이 그대로 되었다며 축하하자 노인은 ‘이게 화가 될 수도 있다’며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이웃들이 다시 찾아와 위로하자 노인은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른다’며 슬픈 기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오랑캐가 쳐들어와 나라에서 징집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를 다친 터라 징집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입니다. 바람 앞 등불 같은 일촉즉발 위기에 이렀다가도 구사일생 회생하여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승승장구한다고 득의 한 듯 우쭐거려서도 안 되고, 하는 일마다 실패한다고 해서 절망할 것도 아닙니다. 작은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인생을 긴 안목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결과보다 동기와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압살롬이 죽었습니다. 그가 자랑삼던 머리채가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려 꼼짝없이 매달렸다가 다윗의 장군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자랑거리가 죽음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드러난 아름다움은 허세일 수 있습니다. 규모와 힘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가치와 철학과 정신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압살롬은 자기 이름 새긴 기념비를 이미 세웠습니다. 아쉽게도 기념비에 적힌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기념할 것 없는 기념비는 세우지 않은 만 못합니다. 압살롬, 그는 젊었지만, 아버지 다윗보다 참신하지도 않았고, 다윗을 추월하는 정신이나 철학, 지도력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기념하려 하시오? 나는 헛것을 추구하다 없는 만 못한 기념비 하나를 남겨 수치를 더했구려. 제발 나처럼 살지 마오. 자기 능력 이상의 자리를 탐하지 말고 자족하기를 바라오.”
사무엘서는 실패한 아들들의 이야기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행실이 나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제사장직을 수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그것이 그 시대의 죄이자 오늘 우리 시대의 악입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사사였지만 아버지 사무엘의 길을 따르지 않고 돈벌이에 빨랐고,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였습니다(삼상 8:3). 다윗의 아들 압사롬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세상 살면서 기념할 것 없는 기념비에 현혹되지 않겠습니다. 명예롭지 않은 명예를 탐하지 않고, 성공 아닌 성공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찬송 : 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
https://www.youtube.com/watch?v=YIhWberCyeI
2022. 10. 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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