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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
사무엘 하 19:1~15
엄혹하고 치열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현실에 적용하며 그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려는 거룩한 의지를 가진 그리스도인 위에 주님의 함께하심을 빕니다.
지난 2월에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러시아의 압승이 예상되었습니다. 길어야 2~3개월 안에 우크라이나가 손을 들 것으로 예측하였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끈질겼고 도리어 지금은 전세가 역전되는 듯한 뉴스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낭패한 러시아가 자국 안에서 병력 소집령을 내리는 등 다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힘만 세다고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승리에는 다양한 요소가 상호작용을 하기 마련입니다.
다윗 진영이 압살롬의 반란군을 피해 도망가는 처지에 있었으면서도 압살롬 무리를 이길 수 있었던 것에는 오랫동안 다윗을 위해 헌신해온 장군과 병사들의 노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서도 강력한 유다와 에브라임 등 대부분이 반란 진영에 속해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다윗의 장군과 병사들은 임전무퇴의 정신과 나라를 위한 살신성인의 태도로 전투에 임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한 지금, 다윗은 자기 슬픔의 늪에 빠져서 왕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운 병사들의 노고를 외면하고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윗으로서는 재기의 기회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목숨 걸고 싸워 승리한 병사들로서는 훈장과 포상을 기대하기는커녕 왕의 깊은 슬픔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의 이런 모습에서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가늠해봅니다. 긴 권력 투쟁을 통해 왕이 된 다윗도 이러할진 데 너무 쉽게 지도자가 되면 지도자의 고뇌와 결단을 배우지 못하여 국민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릅니다. 결국 국력을 쇠하게 합니다.
한편 아들을 잃은 다윗의 슬픔은 곧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향하여 반기를 들고 아버지를 죽이고자 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정책이 다르지도, 아버지의 정치 이념과 뚜렷하게 차이가 있지 않았고, 백성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분명한 가치도 없었습니다. 그저 권력욕뿐이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못된 아들입니다. 이런 아들은 죽어도 쌉니다. 그런데 아비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왕이면서 아비인 다윗은 그저 참담할 뿐입니다. 나는 다윗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이해합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나를 향한 주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인간은 죽어 마땅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이를 못내 안타까워하십니다. 십자가는 요압의 원칙과 다윗의 애타는 마음이 조우하는 곳입니다.
하나님, 다윗의 슬픔에서 저의 불순종과 반역을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의 애타는 마음을 읽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구할 뿐입니다. 이 종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찬송 : 292 주 없이 살 수 없네
2022. 10. 20 목
댓글 '1'
최용우
다윗이 밧세바를 간통한 범죄를 저지르고 그의 남편까지 죽이는 살인을 저지른 후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지만, 죄 값은 치러야 한다고 하셨다. 그 죄 값은 칼과 피비린내가 다윗의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무서운 것이었다.
다윗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대성통곡을 한다. 다윗의 슬픔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고 그의 죽음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더욱 미어지는 슬픔을 느낀 것이다.
다윗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대성통곡을 한다. 다윗의 슬픔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고 그의 죽음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더욱 미어지는 슬픔을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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