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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문고읽기024] 애정은 기도처럼 -이영도
<책소개>
여류시인 이영도 여사의 글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분명히 귀족적이다. 그녀의 몸에 베어 있는 인품, 풍기는 분위기, 교양 같은 것은 단정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그런 삶의 태도는 유교의 토양에 뿌리 내리며 길들여져 온 교양에 기독교적인 정신이 접목되어 꽃이 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풍습과 예절과 사고가 극히 상극인데도 불구하고 그 어느 쪽도 치우침 없이 고수할 건 고수하면서 자신의 생리에 맞도록 소회시켰다는 것이 이영도 수필의 특징이다.
이 책에는 37편의 수필이 실려있는데 한편한편이 모두 군더더기가 없고 반듯하고 단정한 필치로 담담하게 쓰여져 있다. 그렇다고 목사들의 설교나 교장 선생님의 훈화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전혀 아니다. -최용우
<저자>이영도 1916~1976
시조시인. 경북청도 청도 출생으로 아호는 정운이다. 1945년 시동인지 『죽순』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고 부산 여자대학을 나왔으며 중앙대학교 예술대 강사이다. 저서로는 시조집『청저집』, 『석류』,가 있고 수필집으로는 『비둘기 내리는 뜨락』, 『머나먼 사념의 길목』등이 있다.
<목차>
이영도론 - 이동규
반지
뻐꾸기
딸에게서
壽衣
暮色
냉이
등불
뜰과 더불어
임진강의 가을빛
매화
관악 앞에서
淸福
비둘기
중절 모자와 고추장
소녀에게는
능선
내가 본 國島
나의 그리움은
봄비
애정은 기도처럼
수련
오월이라 단오날에
봄볕 아래서
내 가슴의 파도 소리
잡초처럼
달밤
꽃씨
삼월과 흰머리
막걸리와 찻잔
군자란이 피는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K여사와 액자
혜강 선생과 한 줌의 쌀
추석날에
히아신스
달맞이
새처럼
<애정은 기도처럼>
초저녁 잠이 짙은 내 버릇은 첫새벽만 되면 잠이 깨 인다.
어둠이 산악처럼 둘러에운 장지 안에 혼자 등(燈)을 가 까이 일어앉으면 오붓하기 한량없는 나의 시간! 그리움도 슬픔도 티없이 밝아지는 기도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 그지없는 고요의 시간에 시를 생각하고, 사랑을 느끼고, 신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알고 싶어진다. 이렇게 새벽마다, 더구나 요즘 같은 긴긴 가을밤 미명(未明)의 시간을 책도 가까이 하지 않고 골똘해지는 이 생각의 빛과 모양과 소리가 알고 싶어진다.
멍멍하고 아득한 것, 눈물겹도록 그리운 것, 그리고 뜨겁게 슬픈 것, 이 멀고도 가깝게, 맑고도 짙게 내 감정을 윤색(潤色)하는 목숨의 빛깔을 나는 채색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책을 읽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모습 사물, 어느 자연 하나에도 그 너머로 겹쳐 떠오르지 않는 곳이 없는 먼 표정! 그리고 거기 묻어 들려 오는 음성 하나, 이 간절한 빛과 모양과 음성이 바로 나의 본연이요 애정이요 문학인지 모른다.
나는 이 내 본연과 애정을 풀이하기 위하여 시를 쓰고 수를 놓고 그 애정을 채색하기 위하여 꽃을 가꾸고 산수(山水)를 찾는지 모른다.
또 애정을 달래기 위해 신을 불러 무릎을 꿇고 눈물짓는 것인지 모른다.
슬픈 기도도, 알뜰한 솜씨도, 간절한 시도 그 애정을 통해서만이 있는 나의 하늘은 투명한 9만리! 그의 애가(哀歌)의 숨결따라 내 성좌(星座)는 밤마다 명암(明暗)하고, 아쉬움은 먼 무지개로 꿈을 잇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나는 멍멍한 새벽 시간을 혼자 일어앉았다.
영창 밖으로 청정(?淨)히 밝혀 뜬 그의 별빛들이 무수 한 질문을 내게 퍼붓는데, 어느 절도(絶島)처럼 차단된 지점에서 나는 대답할 말도, 몸짓도, 인생조차도, 걷잡을 수 없는 아득한 생각 속에 잠겨 있는 것이다.
눈물처럼 괴는 간절한 생각 속을 지금 멍멍히 인경 소리가 먼 절간에서 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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