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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귀환
사무엘하 19: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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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잘못을 사죄하면서도 기회를 엿보는 시므이, 자기 성공을 위하여 주인을 모함하는 시바, 다윗의 건재함을 확인한 이상 자신의 억울한 오해 정도는 무시하는 므비보셋, 권력에 근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외면하는 바르실래의 모습은 그때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당신은 이런 류의 어디에 해당하십니까? 이 세상은 야비하고 거짓되기를 종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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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하고 치열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현실에 적용하며 그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려는 거룩한 의지를 가진 그리스도인 위에 주님의 함께하심을 빕니다.
세상은 언제나 속고 속이는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라가 어지럽고 전쟁이나 환란이 있을 때에는 그런 일이 더 잦습니다. 정의는 왜곡되고 불의는 징계에 이르지 않고, 선과 악의 혼돈이 생겨 가치의 척도가 흔들립니다. 무거운 악이 쉽게 용서받고, 작은 잘못은 큰 벌을 받는 것도 이런 세상에서 가능합니다. 누구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악과 적당히 야합하며 거짓을 동원하여 권모술수하고 탐심을 드러내고 부끄러움을 자랑삼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갈 때 사울을 따랐던 베냐민 지파 게라의 자손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 일이 있습니다. 도망가는 처지이기는 하였지만 시므이 정도 응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심복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이겠다고 할 때 다윗은 이를 만류하였습니다. 사태는 역전이 되어 다윗은 다시 왕위를 찾아 당당하게 왕의 도성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그 길가에 시므이가 나와서 전날의 잘못에 대하여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였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아비새가 응징하자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번에도 시므이의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이가 다윗에게 사죄하러 올 때 베냐민 지파 천명을 대동하였습니다. 사죄를 청하러 오는 태도라고 보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큽니다. 다윗이 왕위에 복귀하고 예루살렘 성에 귀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왕의 앞길에는 지뢰가 더러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베냐민 지파입니다.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 천 명을 동원하였다는 것은 일종의 시위입니다. 다윗이 시므이의 생명을 지켜준 것은 단순한 선심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타협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정치적 복합 관계가 있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과 세바의 시비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중에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한 다윗을 찾아와 큰 위로와 용기를 준 인물입니다(삼하 17:27~29). 요단강 도강을 앞둔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예루살렘 동행을 요구하였습니다. 왕좌로 복귀는 하지만 변수가 많은 현실에서 충성스럽고 진실된 바르실래가 곁에 있다면 다윗으로서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정중하게 왕의 제의를 거절합니다. 보기가 참 좋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면서도 기회를 엿보는 시므이, 자기 성공을 위하여 주인을 모함하는 시바, 다윗의 건재함을 확인한 이상 자신의 억울한 오해 정도는 무시하는 므비보셋, 권력에 근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외면하는 바르실래의 모습은 그때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당신은 이런 류의 어디에 해당하십니까? 이 세상은 야비하고 거짓되기를 종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질병과 여러 이유로 곤경에 처한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가진 능력보다 저평가되는 친구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십시오.
찬송 : 272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2022. 10. 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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