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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무엘 하 19:4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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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남겨두었던 열 명의 후궁들을 별실에 가둔 일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의 왕궁으로 돌아온 뒤에, 예전에 왕궁을 지키라고 남겨 둔 후궁 열 명을 붙잡아서, 방에 가두고, 감시병을 두었다. 왕이 그들에게 먹을 것만 주고, 더 이상 그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죽을 때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냈다.”(삼하 20:3 새번역) 왕좌에 복귀한 다윗이 할 일이 이 일 말고도 많았을 텐데 왜 성경은 이 사실을 가장 먼저 기록하였을까 궁금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다윗이 무자비한 모습에 섬찟합니다. 그에게서 무책임하고 야비한 남성의 모습을 봅니다. 자기방어 능력이 전혀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이런 가혹한 일을 해도 되는 걸까요? 고통과 슬픔은 남자들이 벌이고 그 폐해와 부끄러움은 왜 힘없고 죄 없는 여성들의 몫이어야 할까요? 딱하고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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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하고 치열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현실에 적용하며 그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려는 거룩한 의지를 가진 그리스도인 위에 주님의 함께하심을 빕니다.
성경, 특히 요즘 읽고 있는 사무엘 하서는 온통 정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잘못 이해한 정교분리 논리를 주장하며 교회의 정치 참여를 반대합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이들일수록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 참여 반대는 정치 참여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나는 성경을 정치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성경은 정치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 나라 다스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한 지혜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 나라 정치 원리를 찾아내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해석된 가르침을 현재 삶에 지혜롭게 적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할 당연한 일입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자제해야 합니다만 공의로운 정책을 응원하고 탐욕과 불의를 꾸짖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가 할 일 아니겠습니까?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다윗의 왕위 복귀에 유다가 앞장서자 다른 지파들이 못마땅히 여겼습니다. 다윗이 유다 지파 중심으로 권력을 편성하려 하자 권력에서 멀어지게 된 것을 염려한 베냐민을 비롯한 다른 지파들이 일종의 하소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배경은 결국 세바의 반란이 태동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성경을 읽으면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화합과 일치를 위하여 왜 탕평책을 쓰지 않았을까를 질문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무조건 두둔하기보다 다윗이 간과한 부분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하지 않을까요?
다윗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남겨두었던 열 명의 후궁들을 별실에 가둔 일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의 왕궁으로 돌아온 뒤에, 예전에 왕궁을 지키라고 남겨 둔 후궁 열 명을 붙잡아서, 방에 가두고, 감시병을 두었다. 왕이 그들에게 먹을 것만 주고, 더 이상 그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죽을 때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냈다.”(삼하 20:3 새번역)
왕좌에 복귀한 다윗이 할 일이 이 일 말고도 많았을 텐데 왜 성경은 이 사실을 가장 먼저 기록하였을까 궁금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다윗이 무자비한 모습에 섬찟합니다. 그에게서 무책임하고 야비한 남성의 모습을 봅니다. 자기방어 능력이 전혀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이런 가혹한 일을 해도 되는 걸까요? 고통과 슬픔은 남자들이 벌이고 그 폐해와 부끄러움은 왜 힘없고 죄 없는 여성들의 몫이어야 할까요? 딱하고 안타깝습니다.
하나님, 아직도 우리는 갈 길이 멉니다. 오만하고 준비되지 못해 어설픈 권력을 나무라기보다 그에 잘 보이려는 꼴이 슬픕니다.
찬송 : 290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2022. 10. 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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