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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상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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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젠가는 없어진다. 영원하지 못하다. 없어지는 것은 그림책과 같고 전부가 비유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려고 비유적으로 쓰신다. 성경에 천사라는 용어가 있는데, 세계적으로 그 나라의 말로 ‘천사’라고 하는데,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천사야’라고 하느냐?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아무개 천사야, 아무개 천사야’라고 부른다기보다 인간의 표현으로 ‘네가 다녀오너라’ 하면 하늘에서는 그냥 통하는 거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부리시면 그게 다 천사라는 거다. 돌려서 말하면 천사는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는 거다.
아이들에게 천사를 그리라고 하면 양어깨에 날개를 달아놓는다. 그러면 천사에게 진짜로 날개가 달려있느냐? 성경에 천사에게 날개가 달렸다고 하는 것은 기동성을 말한다. 그래서 성경에서 천사라고 할 때는 영물의 활동이요 하나님께서 보낸 사자를 말하는 것으로 알면 된다. 그러면 이 천사가 땅의 소식을 전하겠느냐, 하늘의 소식을 전하겠느냐? 하늘의 소식을 전한다.
◆ 세상에서 어버이날을 정해서 지키는데, 자식이 부모님을 왜 존경하고 사랑해야 하느냐? 그 이유가 뭐냐? 자기를 낳고 기르고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나이 들면 시집 장가를 보내서 ‘이제는 나가서 살아라’고 하기 때문에 부모님을 사랑할 의무가 있는 거다. 사람으로서, 그리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은 마땅한 거다. 공경을 안 하면 욕을 얻어먹는다. 부모공경을 안 하는 자식은 ‘왜 날 낳았느냐?’고 할 거고, 이런 심성을 가진 사람은 사회에서 죄를 지을 거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부모는 주 안에서 자녀를 길러야 한다. 주 안에서 기르라는 것은 말씀으로 기르라는 거다. 그런데 말씀으로 길림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자녀가 있다면 부모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내려갈까, 끊어질까? 성경에 부모를 대적하는 자는 죽이라고 했다. 부모가 좋은 지식으로 자식을 가르칠 때 이것을 따르는 자식은 임시적인 세상에서 그래도 잘 살아간다. 임시적인 복을 누리며 산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한 비유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느냐? 세상만물을 누가 만들었느냐? 하나님이다. 자기가 먹고 마시는 것은 다 하나님 거다. 인간 자기를 누가 만들었느냐? 하나님께서 부정모혈을 통해 인간 자기를 만드셨다. 그리고 영을 주셨다. 영이 있어야 도덕성을 가지고 사랑도 하게 되고 지혜지식도 가질 수 있는 거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이것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반 자연은총도 주시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특수은총도 주시고, 내가 자연만물을 쓸 수 있도록 섭리 보존하신다. 지금 내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는 거다. 나의 오장육부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작동하도록 하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나오는 거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지혜시라. 지식이시라.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은 우리로 이것을 가지라는 거다. 그래서 하나님을 배우라는 거다. 그분을 잘 배우면 내가 나를 잘 알게 된다. 학생이 영어 선생님을 좋아하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잘 배우고 듣는다. 이러면 자기의 인격이, 지혜지식이, 도덕성이 하나님 차원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면 하나님만 아니라 만물도 자기를 좋아한다. 반대로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 이유도 모르고, 마음이 붕 떠 있고, 안착이 안 된다. 나중에는 사는 재미도 없고, 시험에 걸리고, 세상의 바람에 불려 다닌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이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지만 애만 먹이면 내쫓긴다. 이러면 사람이 되겠느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서 세상에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수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자기의 목적은 다 임시적이고, 불에 타지는 거고,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려는 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간으로 지어놓은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 함이다. 예수 믿으면서 늘 이것을 자기의 목적으로 삼고 있으면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 이게 믿음의 사람이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어야 하느냐? 이 물음은 ‘부모를 왜 공경해야지?’ 하는 것과 같은 물음이다. 이걸 모르면 물질세계에 살면서 은혜도 없고 영과 육이 다 망해버린다. 이러면 인간이면서 짐승만도 못한 거다.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다. 그렇다면 자기는 누구를 닮았느냐?
◆ 글자 그대로 보면 성경의 솔로몬의 재판에서 솔로몬이 어떤 재판을 했느냐? 산 아기의 엄마와 죽은 아기의 엄마를 찾아냈다. 자기 아기가 죽으면 산 아기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정상이다. 그런데 진짜 산 아기의 엄마가 있기 때문에 솔로몬이 재판을 해서 산 아기의 엄마를 밝혔다. 그러면 솔로몬이 산 아기와 죽은 아기의 엄마를 어떤 방법으로 찾아냈느냐? 지혜를 써서 찾아냈는데, 산 아기를 반으로 가르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산 아기도 죽는다. 이때 산 아기의 엄마는 자기 아기를 쪼개라고 하지 않고 죽은 아기의 엄마에게 주라고 했다. 그런데 죽은 아기의 엄마는 산 아기를 가르라고 했다. 여기에서 산 아기의 엄마를 찾아서 산 아기의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가 아기를 일부러 죽인 게 아닌데, 교육적으로 보면 아기가 왜 죽었느냐? 이것은 비유이니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영의 눈으로 보면 교회가 될 수도 있다. 즉 어머니는 양육자다. 교회 인도자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교회가 죽었다면 죽은 것을 어떻게 아느냐?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제일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살았으면 숨을 쉬고, 죽었으면 숨을 안 쉰다. 그러면 교인들의 신앙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아느냐? 산 성도는 숨을 쉰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그 정신이 하나님과 교통이 되고, 언행심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고, 개인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한다. 하나님은 산 것은 안 죽인다. 그러나 죽은 성도는 예배의 태도에서 알 수 있다. 피 없는 제사를 드린 가인의 후손들이 노아홍수 때 와서 몰살당했다. 그러니까 피 없는 제사는 저주의 제사다. 교회에 나오기 싫고, 말씀을 멀리하면 이 사람은 죽은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언행심사대로 대우해 주신다.
사람이 일반적인 자연법칙을 어기고 살면 자기의 신체가 약해지고 죽는다. 공해가 심하면 자기 몸에 여러 가지 병이 생긴다. 맑은 공기를 마셔야 할 인간이 오염된 공기를 마시면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에서 어그러진 것이라서 은연중에 자기의 목숨이 단축된다. 마지막이 될수록 과학이 생활을 편하게 해주겠지만 이 과학이 자기를 죽여 나간다. 이게 다 물질욕심에서 나온 거다. 그러니까 믿고 안 믿고 간에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사는 게 지혜로운 거다.
믿는 사람은 일반적인 도덕성은 올라서야 한다. 못 올라서면 영적인 차원으로 못 올라간다. 우리는 영적인 차원으로 올라가서 일반성을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모르면 인인 관계성이 잘 안 된다. 이러면 자기 축소다. 자기가 축소되는 사람은 자기의 성격과 성질부터 고쳐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많이 알고 싶으면 설교를 많이 들어야 하지만 또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러려면 높은 학문은 안 배우더라도 최소한 한글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글도 모르면서 성경을 많이 알고 싶다고 한다면 이것은 웃기는 일이다. 그런 것처럼 일반성도 안 된 채로 교회에 다닌다거나 목사나 전도사나 집사가 된다면 웃기는 일이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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