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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사무엘 하 21:15~22
엄혹하고 치열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현실에 적용하며 그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려는 거룩한 의지를 가진 그리스도인 위에 주님의 함께하심을 빕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습니다. 다윗 왕은 군사를 이끌고 가서 맞서 싸웠습니다. 전투는 일진일퇴하며 좀처럼 승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다윗 왕은 많이 지쳤습니다. 이때 다윗을 향해 블레셋의 이스비브놉이라는 거인이 큰 놋 창을 들고 달려왔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위기의 순간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블레셋 거인을 물리쳤습니다. 군사들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삼하 21:17b) 군사들의 말이 애틋하고 충성스럽습니다. 왕이 백성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백성 역시 지도자의 안위를 염려합니다. 만일 지도자가 백성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자기 권력과 욕망의 축적에만 몰두한다면 백성은 등을 돌릴 것입니다. 지도자는 왜 백성이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가를 탓할 것이 아니라 과연 진심을 다하여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자문해야 마땅합니다.
주권과 백성과 영토를 갖추어야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의 왕권은 당시 주변 나라의 왕권과는 달랐습니다. 제도로서 왕정은 이웃 나라와 비슷했지만, 근본 성격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였고, 왕은 하나님의 뜻을 물어 백성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물론 당시 거의 모든 나라가 종교에 기반을 둔 왕정체제였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골목대장 놀이하는 잡신이 아니라 우주를 창조하고 역사를 운행하며 인간의 행복을 실현하시려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이 다스리는 백성은 자기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왕은 주권자가 아닙니다. 왕은 목자일 뿐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백성이 왕을 위해 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백성을 위해 왕이 존재합니다.
이스라엘의 건국 정신은 평등사회 구현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은 오랫동안 이집트에 머물면서 나중에는 이집트인의 노예가 되어 짐승만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집트는 파라오와 제사장 등 소수 특권층의 행복을 위해 다수의 백성과 노예가 복종하는 구조의 사회였습니다. 히브리인의 신음이 하늘에 사무쳤고 하나님은 그 고통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사람이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사회에 대하여 분노하셨습니다.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히브리인의 출애굽을 주도하셨습니다.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이집트에 대하여서는 열 가지 재앙과 홍해 심판을 통하여 호되게 책망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평화하고, 사람과 자연이 조화하고, 하나님과 사람이 대면하는 세상이 이스라엘의 꿈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 지금이라도 권력과 탐욕에 빠진 지도자가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킬 기회를 주십시오. 시민이 행복한 나라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찬송 : 331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https://www.youtube.com/watch?v=7f0UCH1O-cI
2022. 10. 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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