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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시제
사무엘 하 22:1~25
엄혹하고 치열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현실에 적용하며 그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려는 거룩한 의지를 가진 그리스도인 위에 주님의 함께하심을 빕니다.
“인민학교에 다니던 나는 1992년 10월 성경이라는 책을 처음 보았습니다. 대한성서공회 1956년 판으로, 글은 세로쓰기였습니다. 찬송가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종교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나로서는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성경을 펼치면 십계명이 있었는데 그 마지막에 이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소지하는 것이 큰 죄가 되는 사회여서 아버지는 여러 날 고민하다가 얼마 후에 성경과 찬송가를 불살랐습니다. 한편으로 안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웠습니다. 그 후 나는 북한 사회를 탈출하여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어제 한 형제와 나눈 대화의 한 토막입니다. 그는 죽음의 강을 건너 이 땅에 정착한 탈북동포입니다. 어린 나이에 평범한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질곡과 위기와 공포를 넘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개입한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습니다.
구원의 시제는 과거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고, 그리스도인은 죄인 된 자리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은 구원받기 전의 상태가 전제되어야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시제는 과거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구원은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과거로부터의 구원은 미래로 이어져야 마땅합니다.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실현하는 이스라엘을 세워야 했습니다. 광야에서 놀고 먹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비로소 하나님 나라 질서를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의 시제는 미래입니다.
탈북동포 중에 이 사회에 잘 정착하였다고 인정받는 분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겨울옷을 입고 이미 백골이 되어있었습니다. 옆집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복지센터도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도 있었습니다. 도시 한 가운데 살면서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미하나마 탈북동포, 그리고 남북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탈북동포의 구원(남한 정착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은 과거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f이 땅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오늘의 구원이며, 미래를 위한 구원입니다. 독재와 가난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땅에 온 손님이 아니라 미래 한반도를 열어갈 주인공입니다. 그들은 남한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현재성을 초월하여 한반도 미래의 ‘그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죽음의 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구원 시점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 보니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이 무딥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바꿔주십시오.
찬송 : 585 내 주는 강한 성이요
https://www.youtube.com/watch?v=iv67i60aX-M
2022. 10. 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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