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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1. 지금 저는 누군가를 걱정하거나 신경쓰기 어려울 정도로 제 자신의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페이스북을 통해서 외부 이야기를 접하는 것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은 몇 자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2. 저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이 살아오면서 생긴 몇몇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깊은 트라우마는 1996년에서 2003년까지 군종목사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입니다.
제가 7년간 군목으로 사역하는 기간 동안 여러 병사 혹은 간부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군인들이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끔찍한 장면을 현장에서 보는 것은, 제 뇌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주 가끔씩 수도통합병원중환실에서 제가 마주했던, 갈기갈기 찢겨진 군인들의 몸을 꿈에서 마주하곤 합니다.
3.하지만 제가 군목 생활을 하면서 얻은 심각한 내상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군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그래서 병사들이 죽어갈 때마다, 항상 위에서 내려오는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사고 원인을 알려고 하지 마라, 외부에 발설하지 마라, 오직 '애도'만 해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사고의 원인이 명백한데 그걸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고의 원인이 너무나 모호하고 불명확해서 이걸 규명해야 마땅한데, 그런 시도는 꿈도 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빨리 장례식을 치러야 하니까, 그저 애도만 하라는 것입니다.
더 끔찍한 것은, 그 장례식이 '목사'인 제게 할당될 때였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번뇌를 거듭했습니다.
이 사태 앞에서 그저 애도만 하고, 장례식을 치르고, 그리고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그저 덮어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하는, 제 양심을 괴롭히는 문제들과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에는 '고분고분' 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일방적인 순응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제가 심하게 다툰 적이 두 번 있는데 모두 평범한 병사의 죽음과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명백한 부대의 관리 실수였는데, 그냥 덮고 애도만 하라는 것에 따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내 인생의 36.5>인가요, 아무튼 가 쓴 책 한 권에서 밝힌 대로, 제가 군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나온 말은, 한 여름에 40킬로미터 행군을 하다가 죽은 이등병의 죽음 앞에서 그저 애도만 하라고 하는 간부들을 향해 '이 개새끼들아!'라고 고함친 것이었습니다.
아, 물론 목사가 욕을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화가 나서, 제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고함을 쳤습니다.
'이 개새끼들아!'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참 희한합니다.
저는 그런 욕을 한 제 자신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4. 지난 삼일간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태원에서 스러져간 꽃다운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계속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나 싶은, 허탈감에 잠을 못 이룹니다.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라진 우리의 아들 딸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그 젊은이들의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대체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하는 것인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그저 애도하고 애도할 뿐입니다.
5. 하지만 이 엄청난 참변 앞에서, 아무도 사과를 하는 이가 없고, 아무도 책임을 지겠다는 이가 없으며, 그저 애도만 하라고 하는 이 기괴한 현실에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죽은 분들의 시신도 아직 채 한데 모이질 못했으며,
죽은 분들의 영정 사진조차 아직 마련 못한 상태에서,
형식뿐인 분향시설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아침 일찍 경호원을 잔뜩 대동하고 와서 서둘러 조문을 마치고,
우리에게는 그저 애도만 하라고 강요하는 미친 놈들을 향해서,
나는 또다시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야, 이 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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