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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손가락 글씨
다니엘 5:1~16
비록 세속의 가치와 질서의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워하며 하나님의 다스림과 평화의 나라를 사모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동행하심을 기원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교만한 지도자라도 그의 때가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간이 흐름과 더불어 더 나은 지도자가 등장하여 더 좋은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박한 꿈이 여간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거를 통하여 더 나은 사람을 뽑는다고 하지만 정작 전보다 크게 뒤처지는 이가 권력을 휘두르며 역사를 후퇴시키는 경우가 흔합니다. 인품도, 철학도, 지성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가 등장하여 잰척하는 모습은 가히 꼴불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시대가 가고 그의 손자 벨사살의 시대가 왔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힘을 숭배하는 교만한 지도자였다면 벨사살은 할아버지의 교만함에 신성모독의 죄를 더 얹었습니다. 벨사살은 왕과 귀족 천 명이 참석하는 거대하고 호화스러운 잔치를 배설하고 사용할 술잔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하여 마르둑 신전 보물창고에 보관하던 성전 기물을 사용하였습니다. 거룩을 목적으로 제작된 물건을 인간의 유흥을 돋우는 기물로 전용한 것입니다. 우상을 찬양하며 술에 취하여 한껏 연회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석회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벨사살 왕은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오금이 저렸습니다.
뜻밖의 광경에 놀란 왕은 서둘러 지혜자들을 불러 들이고 말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단 5:7). 그만큼 두렵고 다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글자를 읽지 못했습니다. 글을 모르니 뜻도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 지혜자들은 차라리 정직했습니다. 모르니까 답을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아는 척하는 요승이 있습니다. 대통령 부부의 멘토로 알려진 천공이라는 요승은 용산 천도를 사주한 인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하는가 하면, 그는 10.29 참사 희생자 덕분에 ‘좋은 기회가 온다’는 망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해방 후 우리 근현대사의 흐름을 역행하는 이런 이가 있는 한 우리 사회는 반듯한 지성과 촘촘한 제도에 의해 유지되기보다 천박한 무속에 의해 움직이게 됩니다.
다행하게도 왕비가 벨사살에게 ‘문제의 해결은 유다 출신 다니엘에게 있다’고 귀띔합니다. 다니엘이 아니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도 심판을 예고하는 손가락 글씨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니엘을 찾는 일입니다. 교회의 설교자는 다니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시대와 사회의 해석자가 되어야 할 설교자가 무능하고 실력이 없어 조롱거리가 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다니엘의 영성을 길러주십시오.
찬송 : 274 나 행한 것 죄뿐이니 https://www.youtube.com/watch?v=BZoElf1QG9s
2022. 11. 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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