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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다니엘 11:20~35
비록 세속의 가치와 질서의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워하며 하나님의 다스림과 평화의 나라를 사모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동행하심을 기원합니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주전 323년부터 주전 60년까지 30명의 왕이 아나톨리아 중부와 레반트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에 이르는 대제국을 다스렸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 다 그랬듯이 셀레우코스 제국도 그리스 문화와 풍습을 잘 계승하여 제국을 헬레니즘의 중심지로 꽃피웠습니다. 하지만 헬레니즘의 주요 가치인 조화와 일치에 이르지는 못하였습니다. 도리어 헬레니즘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식민지 문화를 탄압하였습니다. 식민지 백성의 저항이 잇달았고 제국은 강경하게 진압하였습니다. 게다가 이집트 지역의 프톨레마이오스 제국과 경쟁으로 국력은 기진하였습니다.
제국의 정신인 헬레니즘을 계승 발전하는 방식이 반헬레니즘적이라는 점은 아이러니입니다. 이런 실수는 셀레우코스 왕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속 교회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순수한 가치를 지키고 하나님 나라 질서를 견지하는 방식이 반기독교적인 경우가 교회 역사에 흔했고, 그런 오류는 아무렇지도 않게 교회의 법과 원칙이 되어 권력화에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회의 가르침이 일치하지 않는 현상은 모순입니다.
유다는 알렉산드로스의 헬라제국이 분열된 후 처음 120여 년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에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치하에서 약 10만 명의 유대인이 이집트로 이주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이방에서 게토를 이루고 자유롭게 문화와 풍습과 신앙을 유지하였습니다. 더구나 두 번째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에 따라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6명씩 선발된 72명의 성경학자가 알렉산드리아에 모여 히브리어와 아람어로된 구약성경을 당시 국제어인 헬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성경을 <70인역(LXX)>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독교의 세계화를 이루는 매우 뜻있는 사건입니다. 헬레니즘이 그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70인역>은 초대교회의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헬라 문화권에 사는 유대인들은 점차 모국어를 잊었고 초대교회 시대의 보편언어는 헬라어였습니다. 만약 <칠십인역>이 없엇다면 복음 선교는 크게 위축되었을 것입니다.
(null) 본문을 읽으면서 사뭇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셀레우코스 왕조의 권력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특히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등장과 그의 야비한 모습, 그리고 두 차례의 이집트 원정을 아주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래에 대한 환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를 기록한 것처럼, 아니 지금 눈앞에 진행되고 있는 현장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권력의지가 강하고 정치적 이해타산에 빠른 군주였지만 신앙적인 면에서 그는 예루살렘 성소를 더럽혔고, 신실한 유대인을 탄압하였습니다. 우리 시대에 에피파네스 같은 이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하나님,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경계하고, 신앙생활에 스며있는 비신앙의 방식을 거부하겠습니다.
찬송 : 300 내 맘이 낙심되며 https://www.youtube.com/watch?v=HACCItSP4rY
2022. 11. 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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