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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복을 받자.
야생의 늑대를 사로잡았다고 할 때 그 늑대에게 복은 그냥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늑대에게 아무리 한우와 제주 돼지 등 최고급 육류를 제공하고 최고로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어도 그런 것들은 늑대에게 전혀 소용이 없다. 오직 늑대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는 없다. 그 외에 늑대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늑대에게는 생존의 법칙이 있다. 비록 때로는 며칠 동안 굶을 때도 있고 다른 늑대와의 다툼이나 더 큰 동물들과의 싸움에서 다칠 수도 있고 쫓길 때도 있지만 그것이 늑대이다. 그것을 상실하면 늑대로서의 존재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늑대가 개로 변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이란 이 야생늑대와 같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의 의미와 방식, 추구하는 고유의 가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야생늑대처럼 싸우는 존재들이다. 마귀와 싸우고 세상의 가치와 싸우고 스스로의 욕심과 싸우는 존재들이다. 왜 싸워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서는 싸우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싸워야 한다. 물론 우리의 싸움은 우리들만 싸우는 것은 아니다. 함께 싸워주시는 분이 계신다. 그러나 그분도 우리가 스스로 싸우려고 하지 않으면 결코 함께 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도무지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의 가치와 싸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치를 따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버리고 비워야 할 것들을 오히려 더 채우려고 힘쓴다.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쳤다. 어려움 당하는 성도들에게 그것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도록,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상황을 쉽게 벗어날 수 있도록 속이고 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마치 늑대를 가두어놓고 고급 고기들과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늑대에게 진정으로 좋은 길은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반달공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지 않은가? 곰뿐만 아니라 여우나 황새나 아무튼 멸종 위기에 있는 동물들을 자연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자연생태계가 살아나는 것이 야생동물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고 인간에게도 최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늑대에게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징 복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도들로 하여금 영적 싸움의 한복판으로 돌아가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런데 마치 늑대를 우리에 가두어놓고 오히려 그 우리 안에서 인간이 주는 먹이를 서로 많이 먹으려고 다투게 만드는 현상이 오늘날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교회끼리 다투고 성도들끼리 자기 자녀들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작정기도하여 다른 아이들을 떨어뜨리려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우리 자신과 세상의 가치와 싸우게 해야 하는데 정말 싸워야 할 대상은 알려주지 않고 쓸데 없는 일에만 몰두하게 만들고 있다. 복 받고 문제 해결하는 것이 복음이 아닌데 간증이든 설교이든 무슨 신비한 은사이든 전부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게 만들고 있다. 무당이나 점집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복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하고, 그것은 삶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드러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며, 어떻게 하면 세상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가치를 위해 스스로를 비울 것인가를 위해 기도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 가두어놓고 많이 받는 것이 복되 것이라는 가짜 복을 향하게 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세상과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복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깨닫도록 해야 한다. 여태까지 우리는 가짜 복을 진짜인 것처럼 가르쳐왔다. 문제를 해결하고 결국 성공했다는 그런 가짜 복에 대한 간증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님 뜻대로 살 수 있을까를 증언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듣는 간증들은 인간승리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다른 종교도 다 그렇게 한다. 구윈파를 이단이라고 하지만 구원파 신도들과 정통 기독교인들이 뭐가 다는가? 지금은 구원파와 똑같다. 기독교가 종교가 아니라면 진리의 모습을 드러내고 그 진리의 가치를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구원은 없다. 마음 속에 그리스도가 안 계시고 가짜 복만 가득 채워져 있는데 그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인가? 진짜 복을 가르쳐야 한다. 영적 야생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어렵고 힘들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참된 복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지금 기독교인들이 십분의 일로 줄어드는 한이 있어도 진짜 복된 길을 걷도록 만들어야 한다.
야생의 늑대처럼 영적 벌판에서 싸우는 것이 진짜 복이다. 그 길만이 복음이 살아나고 세상을 복음의 가치로 확장시켜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그 길만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와 십자가에서 죽으신 의미가 비로소 살아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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