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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백보?
전도서 2:12~17
잘 사는 것이 화가 될 수 있는 세상,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하는 세상살이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자세로 스스로 성찰하여 지혜에 이르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께서 동행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말 사전에는 ‘지혜’를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잃고 얻음과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의 작용으로서, 미혹을 소멸하고 보리(菩提)를 성취’하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능한 한 스스로 지혜에 이르러야 하며, 인생길에서 할 수 있는 한 지혜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배우자와 친구도 그렇고 비록 경쟁상대이거나 적이라도 지혜로운 이를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지도자 역시 지혜로운 자여야 합니다. 손자병법에 ‘용장은 지장과 덕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둔하고 어리석은 자가 지도자가 되면 원심력과 구심력이 약화 되고 역사의 퇴행을 자초합니다. 욕심 사납고 졸렬한 자가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자기는 물론 국가 공동체를 수렁에 빠트리고 백성을 고통에 이르게 합니다. 친구든, 배우자든, 지도자든 할 수 있는 한 지혜로운 이를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전도자도 지혜와 어리석음을 비교하여 그 차이를 인정합니다.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전 2:13).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는 빛과 어둠 같다고 극명하게 표현합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전 2:15)고 말하여 지혜와 어리석음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극소화시킵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가 오십보백보라는 말인데 의아합니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재물이 있고 없음이 어마무시한 차이 같지만, 행복은 물질의 부요함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건강과 병약함이 삶의 질을 가르기는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꼭 오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많이 배운 사람과 불학무식한 사람 사이에 인격의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사기꾼은 많은 배운 사람이 더 많고, 문명인이라고 불리는 야만인도 있습니다.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거기서 거기입니다.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전 2:16b).
적어도 현존하는 세상에서는 지혜와 어리석음이 혼미합니다. 지혜자가 늘 칭송받는 것도 아닙니다. 어리석은 자가 언제나 질타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의인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혜자가 모욕당하는 일이 잦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호위호식하여 천수를 누리기도 합니다. 육체 안에 갇힌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산다는 것이 다 덧없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얽힌 일들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이다”(전 2:17 새번역).
하나님, 죽음은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를 평등하게 합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를 보아야 그 극명한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헛됨 너머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을 허락해주십시오.
찬송 : 492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2022. 11. 30 수
댓글 '1'
김봉진 목사
전도서 2:12-17절 죽음 앞에서는 다 평등합니다.
- 지혜와 우매 비교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낫지만, 지혜가 인생을 허무에서 건져 내진 못합니다. 불현듯 닥치는 고난에 지혜는 속수무책입니다.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16절)
죽음 앞에선 지혜자와 우매자가 동일합니다. 우매자가 당한 죽음을 지혜자도 똑같이 당합니다. 살아서 누린 것은 달라도, 죽어서 누울 자리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묵상을 통해 부활의 소망을 붙잡고 주의 뜻을 분별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 지혜와 우매 비교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낫지만, 지혜가 인생을 허무에서 건져 내진 못합니다. 불현듯 닥치는 고난에 지혜는 속수무책입니다.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16절)
죽음 앞에선 지혜자와 우매자가 동일합니다. 우매자가 당한 죽음을 지혜자도 똑같이 당합니다. 살아서 누린 것은 달라도, 죽어서 누울 자리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묵상을 통해 부활의 소망을 붙잡고 주의 뜻을 분별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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