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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능력
전도서 3:16~22
요즘 뉴스에서 ‘법과 원칙’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노동자들의 합법적 쟁의에 대하여 정부가 쏟아내는 말들입니다. 정부가 ‘법과 원칙’이라는 말을 하려면 사전에 다음 것들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파업하려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 요구는 무엇이며, 노동 현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정부 조직에 고용노동부가 있습니다.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를 실현하고 차별 없는 일터를 조성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정부 조직입니다. 하지만 요즘 정부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인 쟁의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을 쥐잡듯하며 법적 책임과 경제적 책임 묻는 행위를 불사합니다.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건과 행위를 ‘불법’이라고 확인하는 것은 법원이고, 설사 범법행위라 하더라도 거기에 피치 못할 사연이 있다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전 3:16). 이스라엘의 왕인 전도자로서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전도자가 성찰적 지혜의 사람임을 뜻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의 은사를 받은 후 이루어진 재판이 있습니다. 두 창녀가 시빗거리가 생겨 솔로몬을 찾아왔습니다. 한집에 사는 그녀들은 비슷한 시기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기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친자 논쟁이 벌어져 이를 해결해달라고 찾아온 것입니다. 솔로몬은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고 판결하였습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생모가 다급히 친자 포기를 선언합니다. 솔로몬은 과감하게 친자를 포기하는 모정을 알아냈습니다(왕상 3:16~28). 솔로몬은 그녀들의 매춘 행위를 문제 삼지 않았고, 자기 권력을 절대시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생명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을 통해 재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온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두려운 마음으로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정부에 없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법과 원칙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섬찟합니다. 법과 원칙은 만능이 아닙니다. 법과 원칙대로라면 우리 인생 가운데에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키면 살고 어기면 죽는다’는 단호한 원칙을 인류 창조 시점에 세우셨습니다(창 2:17).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털끝 만 한 죄에 대하여서도 반드시 응징하고 심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원칙을 적용하지 않으시고 원칙 이외의 것, 즉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를 드러내셨습니다(롬 1:21).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멸망에 이르지 않는 이유입니다.
잘 사는 것이 화가 될 수 있는 세상,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하는 세상살이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자세로 스스로 성찰하여 지혜에 이르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께서 동행하시기를 빕니다.
하나님, 공감 능력은 없으면서 무대뽀로 좌충우돌하는 이 정권의 무지가 꼴불견입니다.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시민들이 걱정이고 역사의 퇴행이 불안합니다. 제발 정신 차리게 해주십시오.
찬송 : 552 아침 해가 돋을 때
2022. 12. 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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