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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죄
전도서 5:1~8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줄줄줄 외워야 했습니다.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하였고 웅변대회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국민교육헌장>의 글귀 하나하나가 성경 말씀보다 더 지당하고 합당한 말로 생각했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국가주의의 덫에 빠진 것입니다. 국민윤리학과를 졸업한 이가 중고등학교에서 반공 교사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국가주의의 위험성을 알게 된 것은 훨씬 지나서입니다. 알고 지내는 국민윤리학과 교수가 있었는데 그의 삶은 국민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에게서 역사의식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하지도 않았습니다. 목사님들에게 하나님 나라 의식이 없다는 것에 비하면 모두 새 발의 피입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고, 국민윤리학과도 이름과 학과 커리큘럼을 새로 짰습니다. 매해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반포일을 기념하던 행사는 1994년부터 사라졌고, 2003년에는 아예 폐지되었습니다.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대통령이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행사에 나와서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는지 싶습니다. 그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성장한 세대입니다. 불행하게(?) 나는 국가주의에 덫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는 국가주의 그늘에서 승승장구한 검사입니다. 그는 ‘노동자의 파업을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며 보호하고 설득해야 할 국민인 노동자를 적으로 간주하여 강경하게 맞서겠다고 합니다. 국가주의적 가치관에 갇히면 국민 간과하는 일이 예사롭습니다. 국가주의란 국가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보다 우선시하여 국가를 최상으로 여기는 가치관입니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타와 폭행을 일삼는 이란의 ‘도덕경찰’이 그렇고,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던 국정원이 그런 경우입니다.
전도자는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다”(전 5:1 새번역)고 주의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르면서 악행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나 아렌트(1906~1975)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과 ‘생각하지 않은 죄’입니다. 아이히만은 나치스의 공무원으로서 자기 업무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는 자기가 행하는 일이 유대인에게 얼마나 가혹하고, 역사를 퇴행하게 하는 일인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는 이런 악을 저지르는 이에 대하여 심판을 경고합니다. “어느 지방에서든지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고, 법과 정의를 짓밟아도, 너는 그것을 보고 놀라지 말아라. 높은 사람 위에 더 높은 이가 있어서, 그 높은 사람을 감독하고, 그들 위에는 더 높은 이들이 있어서, 그들을 감독한다.”(전 5:8 새번역). 악행을 일삼는 자를 살펴보는 분이 계십니다.
잘 사는 것이 화가 될 수 있는 세상,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하는 세상살이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자세로 스스로 성찰하여 지혜에 이르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께서 동행하시기를 빕니다.
하나님, 생각하지 않은 죄에 이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생각 없는 이들의 무책임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역사의 퇴행을 가져옵니다. 반드시 저들을 심판하여 주십시오.
찬송 : 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https://www.youtube.com/watch?v=ctoFTEPgXz8
2022. 12. 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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