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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기원과 역사

목회독서교육 신학공부............... 조회 수 111 추천 수 0 2023.01.04 19: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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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dabia.net/xe/1063599 

이 글은 프랭크 바이올라, 조지 바나 두 사람이 쓴

<이교에 물든 기독교: 현대 교회에서 행하는 관습의 뿌리를 찾아서>의

‘목사’ 제도에 관한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프랭크 바이올라, 조지 바나

<이교에 물든 기독교: 현대 교회에서 행하는 관습의 뿌리를 찾아서> 중에서

 

"목사의 기원과 역사"

 

우리가 이 장을 통틀어 목사(pastor)라는 말을 사용할 때, 현대 목사의 직책과 역할을 묘사하는 것이지 그 자리를 차지하는 특정한 개인을 지칭하는 거이 아님을 주지하라. 대체로 목사의 직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섬기는 데 열정이 있는, 존경할 만하고 괜찮은, 꽤 유능한 사람들이다.

 

성서에 목사가 있지요...그렇죠?

 

목사들(pastors)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신약성서에 등장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에베소서 4:11)

 

이 구절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고찰해 볼 수 있다.

 

1) 이것은 신약성서에서 목자(pastor, 한국 성서엔 '목사'라고 번역되어 있음)라는 단어가 사용된 유일한 구절이다. 로마 카톨릭도 사제(priest: 제사장)라는 말에 똑같은 잘못을 범했다. 신약성서에 priest라는 말이 세 번 등장하는데, 전부 다 그리스도인 모두를 일컫는다.

 

2)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복수이다. 목자들(pastors)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목자들"이 누구였든지 간에, 그들은 교회 안에서 단수가 아닌 복수였다.

 

3) “목사”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포이멘’(poimen)이다. 그것은 목자들이라는 뜻이다.(Pastor는 목자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렇다면, 목자는 교회 안에서의 특정한 역할을 묘사하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직책이나 직위가 아니다. 1세기 목자는 현대 기독교가 부여한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개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11은 목사의 직책을 그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교회 안에서의 여러 기능 중 하나를 그리고 있다. 목자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고 양육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목자들을 오늘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직책 혹은 직위와 혼동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이다.

 

4) 아무리 생각해도 에베소서 4:11은 좀 헷갈리게 한다. 그것은 목자들이 누군지에 대해 전혀 정의하거나 묘사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그들을 언급했을 따름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가 서구 사상에 입각한 목사의 개념을 이 단어에 갖다 붙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목사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거슬러 올라가서 신약성서를 읽어 왔다. 1세기 그리스도인 그 누구도 오늘날의 목사라는 직책을 고안해낼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1세기 목자들은 지역의 장로들(presbyters)과 교회의 관리자들(over-seers)이었다.

 

감독들은 단지 관리자 ? 에피스코포(episkopoi)일뿐, 교회의 고위직이 아니다.

목자들(목사들)은 돌보는 사람 ? 포이멘(poimen)이지, 전문 설교자가 아니다.

사역자들은 섬기는 사람 ? 다아코노스(diakonos)이지, 성직자가 아니다.

장로들은 지혜로운 연장자 ? 프레스뷰테로스(presbuteros)이지, 종교적 직분을 맡은 사람이 아니다.

 

단일 감독 체제의 등장

 

2세기까지는 교회에 공식적인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교회가 지도자들을 두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리더십은 채워야 할 종교적 '직책'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비공식적인 성격을 띠었다. 신약성서학자들은 아주 명백하게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1세기 교회들은 제사장과 성전과 제사가 없는 종교 그룹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을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머리되심 아래 두었다. 지도자들은 유기적이고 직위가 없었다. 그들은 직위나 직책이 아닌 섬김과 영적 성숙에 의해 인정되었다. 양떼 중에는 장로들이 있었다. (목자들 또는 관리자들) 이 사람들은 모두 다 대등한 위치였다. 그들 사이에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 교회를 개척했던 순회 사역자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 또는 사도들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돌봤던 교회들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또는 교회들을 좌지우지하지도 않았다. 신약성서에서 사용된 리더십의 언어는 피라미드 구조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본을 보이는 삶이 포함된 수평적인 관계의 언어이다.

 

교회 리더십은 순회하던 사도적 일꾼들(교회 개척자들)의 사망 시점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1세기 말과 2세기 초에, 지역의 장로들은 사도적 일꾼들이 감당했던 독특한 리더십 역할을 이어받아, 그 지역에 거주하는 "후계자들"로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각 교회에서 단일 지도자가 출현하는 데 일조했다. 교회는 신약성서의 사도들에 의해 훈련된 순회 사역자의 영향 없이 주위 문화의 조직방식을 따라 표류하기 시작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35-107)가 이렇게 표류하게 된 것에 일조한 사람이다. 그는 교회 안에서 단일 지도자를 지향하는 비탈길의 내리막으로 첫발을 내디딘, 교회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에게서 현대 목사와 교회 계급구조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그나티우스는 각 교회의 장로 중에서 한 명을 택하여 다른 사람들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높여진 장로는 이제 '감독'이라고 불렸다. 장로들 그룹에 속했던 모든 책임이 감독에 의해 수행되었다. 107년에, 이그나티우스는 순교하고자 로마로 향하던 중 시리즈로 여러 개의 편지를 썼다. 그 편지 7개 중 6개는 뭔가 똑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들은 감독 직책의 권위와 중요성을 높여놓았다.

 

이그나티우스에 의하면, 감독은 최종적인 권위를 갖고 있고,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그의 편지들에서 발췌한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라: "그러므로 우리는 감독을 주님으로 여겨야 마땅합니다...여러분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따르듯 감독을 따라야 합니다...감독이 가는 곳엔 어디든지 사람들도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듯이...감독 없이 침례(세례)를 주거나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승인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하나님과 감독을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감독을 존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존중해주실 것입니다...감독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그러므로 주님께서 아버지 없이, 그리고 아버지와 연합하심 없이 자신에 의해서나 사도들에 의해서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듯이, 여러분도 감독과 장로들 없이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됩니다...여러분은 감독을 하나님의 분신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그나티우스에게는, 장로들이 12사도의 자리에 있다면 감독은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주의 만찬을 거행하거나, 침례(세례)를 주거나, 권면을 하거나, 교회 지체들을 징계하거나, 결혼을 허락하거나, 그리고 설교하는 것이 전부 다 오직 감독 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장로들이 주의 만찬 때 감독과 함께 앉아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주관한 사람은 감독이었다. 공중기도와 사역을 주관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아주 극한 상황에서만 감독 없이 평신도가 주의 만찬을 거행했다.  왜냐하면, 이그나티우스가 말하기를, 감독이 떡과 잔을 "주관"하고 그것들을 나눠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그나티우스의 생각에는, 감독이 거짓 교리를 일소하고 교회의 연합을 확립하기 위한 구제책이었다. 이그나티우스는, 교회가 이단의 공격에서 살아남으려면, 로마의 중앙집권 체제를 본뜬 확고하고 강력한 조직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단일 감독 체제가 이단과 내부의 분쟁에서 교회를 구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것이 "단일 감독" 또는 "절대 감독 체제"로 알려졌다. 그것은 감독이 장로들과 구별되어 그들 위에 있는 조직의 형태이다. 이그나티우스 때는 단일 감독 체제가 다른 지역으로는 퍼져 나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2세기 중반에 가서, 이 모델이 대부분 교회 안에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고, 3세기 말에 가서는 제국의 모든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감독은 결국 교회 재정의 담당자 겸 분배자가 되었다. 그는 신앙에 대해 가르치고 기독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야 하는 책임을 진 사람이었다. 한 때 활발했었던 회중은 이제 수동적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저 감독이 하는 것을 구경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실상 감독은 교회의 단일 목사가 되었다 - 공중예배 속의 전문가. 그는 회중의 대변자이자 머리이고, 또 모든 교회 활동을 관장하는 사람으로 인정되었다. 요컨대 그는 현대 목사의 선구자였다.

 

장로에서 사제로

 

약 100년 경에 세상을 떠난 로마의 클레멘트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지위의 구분을 둔 최초의 기독교 저술가였다. 그는 사역자들에게서 비사역자들을 구별하려고 '평신도'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했다. 클레멘트는 구약의 제사장에 관한 법이 기독교 교회 안에서 성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인 중에서 분리된 계층을 일컬으려고 '성직자'라는 단어를 사용한 최초의 저술가였다. 터툴리안과 클레멘트는 둘 다 그들의 저작들에서 성직자라는 말을 일반화시켰다.

 

반면에, 신약성서는 결코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고, 사역을 하는 사람(성직자)과 사역을 받는 사람(평신도)이 따로 있다는 개념을 지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터툴리안과 클레멘트의 주장은 모든 신자가 똑같은 지위를 공유한다는 신약성서에 따른 사고방식에서 분명히 결별한 것이다. 3세기 중반에 가서는, 감독의 권위가 고정된 직책으로 굳어졌다.

 

카르타고의 시프리안의 등장으로 충격은 가중되었다. 시프리안의 영향으로 문이 열려 구약의 제사장, 성전, 제단 그리고 희생 제사의 제도가 부활했다. 감독들은 '사제'(제사장)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이 관습이 3세기에 가서 일반화되었다. 그들은 또한 경우에 따라 '목사'라고도 불렸다. 3세기에는 모든 교회가 자체의 감독을 두었다. (이 때 감독들이 본질적으로 지역 교회의 머리가 되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로마 카톨릭에 있는 교구 감독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감독들과 장로들을 합쳐서 '성직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프리안은 감독에겐 하나님 이외에 다른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다. 감독은 하나님께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에게서 자신을 분리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자신을 분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울러 시프리안은 주님의 양떼 중 일부가 목자(감독) 하나하나에 할당되었다고 가르쳤다.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 감독들은 주의 만찬의 책무를 장로들에게 위임하기 시작했다. 장로들은 감독이 교회에서 그의 권위를 행사하도록 돕는 감독의 부관들이나 다름없었다. 장로들이 주의 만찬을 인도하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사제(제사장)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더 깜짝 놀랄 만한 것은 감독이 죄를 사할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4세기에 가서는, 이런 계급구조가 기독교 신앙을 지배했다. 성직자 계급이 이제 굳어져 버렸다. 교회의 머리에 감독이 우뚝 서 있고, 그의 밑에 장로들의 그룹이 있었다. 그들 아래에는 집사들이 그리고 고들 모두 아래에 평신도들이 있었다. 단일 감독체제는 로마제국을 통틀어 교회 행정체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때 특정한 교회들이 다른 교회들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계급 구조는 그 범위가 더 넓어졌다.)

 

4세기 말에는 감독들의 기가 더 살게 되었다. 콘스탄틴이 그들에게 엄청난 특권을 준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들은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고, 이것이 장로들에게서 그들을 더 분리시켰다. 시프리안은 감독 직책을 더 강화시키려는 시도로 감독이 베드로에게서 끊이지 않고 계승되어 왔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사상을 가리켜 "사도권의 계승"이라고 한다. 시프리안은 그가 쓴 글들을 통틀어 이 관습을 정당화하려고 구약에 있는 제사장 제도의 공식적 용어를 도입했다. 시프리안도 그 전의 터툴리안과 히폴리투스와 마찬가지로 장로들과 감독들을 지칭하고자 sacerdote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는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갔다. '성직주의'의 개념, 즉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중재하려면 하나님이 임명한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믿음은 시프리안에게서 유래했다. 그는 기독교 성직자가 거룩한 제사(성찬)를 드리는 사제(제사장)이므로 그들은 스스로 신성(거룩)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우리는, 사제가 성찬을 거행할 때 그가 회중을 대신해서 실제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치는 것이라는 개념도 시프리안이 주창한 것으로 돌릴 수 있다. 시프리안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성찬을 통해 다시 한 번 희생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중세 가톨릭 미사의 씨앗을 시프리안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 사상이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틈을 더 벌려놓았다. 또한, 그것이 평신도가 성직자에게 의지해야 하는 건전치 못한 전통을 만들어냈다.

 

사제의 역할

 

중세 전까지는 장로들(이제는 일반적으로 "사제"라고 불리게 된)이 감독의 조력자였다. 그러나 중세 때 변화가 일어났다. 감독들이 정치적 직무에 종사하는 동안 장로들은 제사장직을 대표하기 시작했다. 일반 교구(지역)의 사제들이 교회 안에서 감독보다 더 중심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4세기 중반에 라틴어가 통용되기 시작하자 사제는 "혹 에스뜨 꼬르뿌스 메움"이라는 말로 기원을 하게 되었다. 이 라틴어는 "이것은 내 몸이다"라는 뜻이다. 이 말로 사제는 카톨릭 미사 중 일어난다고 믿는 신비한 현상의 주관자가 되었다. 단순하게 "혹 에스뜨 꼬르뿌스 메움"을 읊으면 초자연적 현상에 의해 떡과 잔이 주님의 육체적인 몸과 피로 바뀌게 된다는 사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밀라노의 암브로즈라 할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은 무대 마술에서 중얼거리는 주문인 "호커스 포커스"가 "혹 에스뜨 꼬르뿌스 메움"에서 왔다고 말한다.) 암브로즈에 의하면, 사제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떡으로 들어가시도록 기원하는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렇게 사제가 성례를 집전하는 역할을 받았기 때문에, 프레스비테로스라는 말이 '성직자'라는 뜻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라틴어인 '프레즈비터'가 영어에 도입되었을 때 그것은 '장로'라는 뜻이 아닌 '사제'라는 뜻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사제가 지역의 장로를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영향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에워쌌던 그리스와 로마 문화는 서서히 교회 안으로 침투하는 계급제도를 강화시켰다. 그리스와 로마 문화는 본질적으로 계급의식이 강했다. 새로 회심한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적 배경을 신자들의 공동체 속으로 갖고 들어왔을 때 이런 영향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었다. 인간의 계급 의식과 ‘공식적인’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제도화했다.

 

5세기에 가서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개념이 그리스도인의 관습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하나님께 가는 통로는 이제 성직자 계급에 의해 좌우되었다. 성직 독신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고, 가끔 있었던 성찬식이 소위 평신도의 정기적 습관이 되었다. 교회 건물은 이제 향과 연기로 뒤덮이게 되었고, 성직자의 기도는 비밀리에 올려졌다. 그리고 성직자를 평신도에게서 분리하는, 작지만 아주 중요한 칸막이가 소개되었다. 감독의 역할 또한 바뀌어 지역 교회의 머리에서 할당된 지역의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위치로 올려졌다. 감독들은 로마 총독들이 그들의 담당 지역을 다스리듯 교회들을 다스렸다. 궁극적으로 로마의 감독에게는 가장 큰 권세가 주어져서 그의 위치가 마침내 교황의 자리로 발전하였다.

 

콘스탄티누스와 로마의 계급 구조

 

기독교가 퍼져 나갔던 세계의 사회는 단일 통치자인 황제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콘스탄틴이 4세기 초에 권좌를 손에 넣자마자 곧 교회는 완전한 상명하달식의 계급조직 사회가 되었다. 에드윈 해치는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대부분 영역에서 기독교 교회들은 스스로 연합하여 로마제국의 줄에 섰다.”이것이 교회가 도입한 계급구조를 교회의 리더십 구조 안에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전부 상명하달식의 리더십 체계에 의해 지배되는 교구와 지역과 행정구역들의 등급으로 교회가 분할되게끔 적용되었다. 해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기독교 교회들의 조직은 서서히 발전했지만, 그 조직을 구성한 요소들은 이미 인간사회에 존재하고 있었다.”

 

윌 듀란트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기독교는 “이교 신앙과 의식을 흡수해서 자랐고, 로마의 조직방식과 사조를 물려받아서 승리자의 교회가 되었다...유대 나라가 기독교에 윤리를 주었듯이, 그리고 그리스가 신학을 주었듯이, 이제 로마는 조직을 주었다. 이 모든 것이 여기저기서 흡수한 신앙과 섞여서 기독교 혼합물 속으로 들어왔다.  4세기에 가서 교회는 로마제국의 예를 따라 같은 길을 걸었다. 콘스탄틴 황제는 로마의 지방 행정구역 방식을 본떠서 교회를 교구들로 조직했다. (교구라는 말은 로마제국의 큰 행정구역을 일컫는 세속적인 용어였다.) 나중에 그레고리 교황은 교회의 사역 전체를 로마법에 따라 정리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방식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류역사의 드라마 속으로 들어오셨을 때 리더십 계급구조뿐 아니라 전문적인 종교 아이콘도 다 폐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본성과 사명의 연장선상에서, 초대 교회는 역사상 최초의 “평신도 주도”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사도들과 그들이 훈련한 사람들의 죽음과 함께 뭔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 시대 이래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회가 있던 사회들에서 교회의 조직방식을 취했다 - 주님께서 독특한 성격을 지닌 새로운 사회를 시작하신다는 주님의 경고에도.(마 23:8-11과 막 10:42) 시내 산에서 시작된 구약과는 두드러지게 대조적으로,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은 둘 다 새 이스라엘을 위한 어떤 고정된 조직방식도 부과하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와 영광스러운 성직제도

 

성직자들은 로마제국의 가장 높은 고위관리들, 아니 황제 자신이 누리는 것과 똑같은 영예를 얻었다. 사실, 콘스탄틴은 그가 로마 총독들에게 준 것보다 더 큰 권세를 로마의 감독들에게 주었다. 그는 또한 성직자가 고정적인 연봉(사역 수당)을 받도록 명령을 내렸다. 313년에 그는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면세 혜택을 주었다 - 이교제사장들이 전통적으로 누렸던 혜택. 그는 또 성직자들을 공공 및 사회적 의무에서도 면제시켜 주었다. 그들은 일반 법정에서 재판받는 것에서도 자유로웠고, 군 복무도 면제되었다(감독들은 일반 법정이 아닌 감독의 법정에서만 재판받았다.)

 

이 모든 것에 성직자는 특별계급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콘스탄틴이 더 높은 사회계층을 표현하는 클레라클(성직자)과 클레릭스(성직자)라는 말을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또 기독교 성직자가 정부 관리들과 똑같은 특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독들이 일반 재판장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재판하게 되었다.

 

이것은 불안한 결과를 가져왔다: 성직자들이 교회 관리의 위상, 수혜 계층의 특전, 그리고 부유한 엘리트의 권세를 골고루 갖추게 되었다. 그들은 구별된 사회적 신분과 생활수준을 가진 동떨어진 계급이 되었다(이것은 독신 성직자들에게도 해당되었다.) 그들은 옷을 입고 치장하는 것도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은 머리를 밀었다. 삭발이라고 알려진 이 관습은 고대 로마의 입양의식에서 온 것이다. 이렇게 머리를 삭발한 사람들이 사무원 또는 성직자라고 알려졌다. 그들은 또한 로마 관리들의 복장을 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틴 시대에 수많은 사람이 갑자기 "사역으로의 부르심"을 경험했던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생각에, 교회의 직책을 맡는 것은 부르심이라기보다는 평생의 직업이었다.

 

거짓된 이분법

 

3세기에 가서는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성직자들은 교회의 훈련된 지도자였다. 즉, 정통의 수호자들이었고, 사람들을 다스리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찮은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은사와 은혜를 소유했다. 평신도들은 훈련되지 않은 2류 그리스도인이었다. 저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정확히 지적했다: '평신도'라는 말은 종교 용어 가운데서 가장 나쁜 말 중의 하나이므로, 그리스도인의 대화 속에서 추방되어야 마땅하다. 이 거짓된 이분법은 신성한 직업('사역'으로 부르심받은 것)과 평범한 직업(세상의 직업으로 부르심 받은 것)이 있다는 식의 크게 잘못된 사상으로 인도했다. 역사가 필립 샤프는 이런 요인들을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리스도교의 깨끗한 물줄기"가 오염된 곳에 "교회의 세속화"가 이루어졌다. 이런 잘못된 이분법이 오늘날 아직도 많은 신자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주지하라. 그러나 이 개념은 기독교 사상이 아니고 이교사상이다.

 

그것은 매일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거룩해진다는 신약성서의 진리를 파괴한다. 이런 사고방식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용어가 생겨났다. 그리스도인들이 이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4세기에 폰티펙스(이교의 직함)라는 직함이 기독교 성직자의 일반적인 호칭이 되었다. '의전관'과 '단장' 같은 말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신비를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성직자의 신비성을 강화시켰다. 요약하자면,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쯤 성직자는 신성한 계급('거룩한 사람들'의 영적 엘리트 그룹)이 되었다.

 

안수의 오류

 

4세기에 신학과 사역은 사제들의 독점적 영역이었고, 노동과 전쟁은 평신도들의 영역이었다. 사제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과의식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안수였다.

 

안수에 관한 역사적 뿌리를 살펴보기 전에,  초대교회에서는 지도자가 어떻게 인정되었는지를 알아보자. 1세기의 사도적 일꾼들(교회 개척자들)은 교회를 세우고서 떠났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교회를 다시 방문했다. 그들은 그 교회 중 몇몇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장로들을 세웠다. 모든 경우에 장로들은 공개적으로 승인받기 전에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장로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그들은 어떠한 직책으로 임명받지 않았다. 그 게 아니라, 교회의 연장자로서 영적 섬김을 통해 교회에 이바지한 것을 토대로 인정된 것이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교회 안에서 특정한 은사가 있는 지체들을 인정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유기적이다. 모든 신자는 교회 안에서 여러 사역을 수행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을 인정하는 분별력을 갖고 있다.

 

놀라운 것은 신약성서에 장로들이 공개적으로 세 구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로들은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에서 세움 받았다(행 14:23).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서 장로들을 세우라고 했다(딤전 3:1 이하). 그는 또한 디도에게 그레데의 교회들에서 장로들을 세우라고 했다(딛 1:5 이하). 이 구절들에 등장하는 '안수하다'(ordain)라는 단어는 직책을 만들어 거기 앉히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미 벌어지는 것을 인정하고, 지지하고, 드러낸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또한 축복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장로들과 다른 사역들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때 보통 사도적 일꾼들이 손을 얹었다(일꾼들이 보냄을 받을 때도 교회나 장로들이 이렇게 했다). 1세기에 손을 얹는 것은 직책에 앉히거나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역할을 인정하거나 확인한다는 뜻이었다. 유감스럽게도 2세기 말과 3세기 초에 그 반대의 의미가 받아들여졌다.

 

3세기 때는 '안수'(ordination)가 완전히 다른 뜻이 되었다. 안수가 공식적인 기독교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4세기에 가서는 안수식이 상징적인 복장과 엄숙한 의식으로 꾸며졌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서 안수의 방식을 도입했을까? 그들이 로마의 행정관리들을 임명하던 관습에서 안수식을 본뜬 것이다. 안수식의 모든 과정이, 사용하는 말까지도, 로마 관료사회에서 직수입되었다. 4세기에 가서는 로마 관리를 임명하는 데 사용한 용어들과 기독교 안수에 사용한 용어들이 동의어가 되었다.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선택의 종교로 공인했을 때, 교회 리더십 구조는 정치적 인가를 받아 보장되었다. 구약의 제사장제도 방식이 그리스 계급제도와 합쳐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안수는 철회할 수 없는 의식으로 간주되었다. 어거스틴은 안수가 사제에게 "절대로 지울 수 없는 인장"을 박아서 그의 맡은 역할을 완수하도록 권한을 부여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기독교의 안수는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성립시키는 제도로 이해되었다. 그것에 의해 성직자는 성사를 주관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신성한 의식을 거행하는 사제가 모든 그리스도인 중 가장 완전하고 거룩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와 크리소스톰은 사제들에 대한 기대가 높았기 때문에, 성직자들이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의 거룩함에 따라서 사는 데 실패한다면 그들에게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했다. "크리소스톰의 의견에는, 사제가 그의 교구 사람들에 의해 천사처럼 평가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부서지기 쉬운 재질처럼 평가되어서는 안 되었다." 사제가 어떻게 그런 순수한 거룩함의 상태로 살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천사들의 성가대"에서 섬기기에 합당할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안수였다. 안수에 의해 신성한 은혜의 물줄기가 사제에게로 흘러들어 그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성직의 부여'라고도 알려진 이 사상은 닛사의 그레고리의 문헌들에 최초로 등장한다. 그레고리는 안수가 사제를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다르고 더 월등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신도 위에 그를 높이 세워준다고 주장했다. 그레고리는 이렇게 기술했다: "말씀의 똑같은 능력이 사제를 숭고하고, 존귀하고, 구별되게 만들어준다...어제까지 사제는 일반대중의 하나요 뭇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졸지에 안내자, 총수, 의의 스승, 숨겨진 신비의 선생이 된다.“

 

4세기 때의 문서에 있는 말을 들어보라: "감독, 그는 말씀의 사역자요, 지식의 보존자요, 신성한 예배의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의 중재자입니다... 그는 여러분의 통치자이고 총독입니다...그는 여러분에게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을 자격이 있는 하나님 다음의 존재이며 땅에 있는 여러분의 신입니다." 사제들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와 동일시되었다. 사제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다는 것을 더 보여주고자, 그들의 생활방식과 복장은 평신도들의 그것과 달리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안수의 개념은 기독교 신앙을 결코 떠난 적이 없다. 그것은 오늘날의 기독교에도 살아있고 또 잘 나가고 있다. 사실, 만일 당신이 현대 목사가 왜,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토록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높여졌을까 의아해한다면, 바로 이것들이 그 근원이다.

 

에두아르트 슈바이처는 그의 고전 Church Oder in the New Testament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사역이나 성직의 능력을 부여하는 안수에 관해서 사도 바울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1세기의 목자들(장로들, 감독들)은 오늘날의 안수 비슷한 것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다른 양떼 위에 높여진 적이 없었다. 그들은 양떼 중에서 섬기던 사람들이었다. (행 20:20-28과 벧전 5:2-3을 참조할 것)

 

1세기 장로들은 다만 그 교회를 돌봐주던 순회 사역자들(사도적 일꾼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인정되었을 뿐이다. 그런 확인 작업은 단순히 그들의 역할에 대한 인정이었다. 그것은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지도 않았고, 영구적인 자격도 아니었다. 현대 안수의 관습은 그리스도인의 특수계층을 형성해낸다. 가톨릭 사제이건 개신교 목사이건 간에 그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가장 중요한 사역은 소수의 '특별한' 신자들에게 국한된다는 것.

 

신약성서 그 어디에도 설교하고, 침례(세례) 주고, 주의 만찬을 인도하는 것이 '안수 받은 사람'에게 국한된다는 말은 없다. 저명한 학자인 제임스 던은 다음과 같이 아주 멋지게 표현했다: 성직자 - 평신도 전통은 대부분 다른 이단들보다 신약성서의 권위를 더 손상시켰다. 교회의 직책이 오직 안수식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안수를 주는 권세가 종교적 권위를 소유하는 데 결정적인 쟁점으로 떠올랐다. 성서의 전후 문맥은 사라졌다. 그리고 성직자/평신도의 계급 구분을 정당화하려고 '본문을 증빙자료로 사용하는' 방법들이 난무했다. 가장 좋은 예는 아마 교황제도와 사도권 계승의 교리를 정당화하려고 마태복음 16장을 사용했던 초기 가톨릭일 것이다. 그 결과, 대개 교육을 받지 못해 무식했던 일반 신자들이 전문 성직자의 자비 아래 놓이게 되었다.

 

종교개혁

 

16세기 개혁자들은 가톨릭의 사제 제도에 대해 날카롭게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사제에게 포도주를 피로 변화시키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상을 공격했다. 그리고 사도권의 계승설을 부정했다. 그들은 성직자에게 결혼하도록 격려했다. 그들은 의식을 개편해서 회중에게 참여의 기회를 더 넓혀주었다. 아울러 고들은 감독의 직책을 폐지하고 사제의 권한을 줄여서 장로로 되돌려 놓았다. 그렇지만 불행스럽게도,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평신도의 구분을 개신교 운동으로 그대로 옮겨왔다. 그들은 또 가톨릭의 안수 개념을 그대로 보존시켰다. 그들이 감독의 직책은 폐지했다 할지라도, 단일 감독체제를 부활시켜 새 옷으로 갈아 입혔다.

 

종교개혁의 강령은 전 신자 제사장주의의 회복이었다. 그렇지만, 이 회복은 단지 부분적인 데 그쳤다. 루터, 캘빈, 그리고 츠빙글리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관하여 신자가 제사장임을 긍정했다.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인간 중재자의 필요 없이 하나님께 직통한다고 옳게 가르쳤다. 이것이야말로 획기적인 회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짜리 회복이었다. 개혁자들이 실패한 것은 공동체적 차원에서 신자가 제사장임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구속사적으로는 모든 신자 제사장주의를 회복시켰다 - 즉, 구원에 관계된 것에는, 그러나 교회적으로는 그것을 회복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 즉, 교회에 관계된 것에는.

 

달리 표현해서, 개혁자들은 단지 신자(단수로서의)가 제사장이라는 부분만을 회복시켰다.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 자체는 참 훌륭한 것이지만, 그들은 모든 신자(집합적 복수로서의)가 제사장이라는 사실은 회복시키지 못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상호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복된 진리이다. (이 진리를 회복시킨 사람들은 아나뱁티스트: 재침례교인들이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개신교와 가톨릭의 칼이 아나뱁티스트들을 피로 물들인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의 회복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개혁자들은 교황과 그의 종교적 계급을 반대했지만, 그들이 물려받은 사역에 대한 좁은 견해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역'이 '부르심을 받고' 또 '안수 받은' 소수에게 국한된 제도라고 믿었다. 따라서 개혁자들은 계속해서 성직자 - 평신도의 구분을 지지했다. 그들에겐 오직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고 사역자라는 말만 무성할 뿐이었고, 그들의 실제 삶에서는 그것을 부정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화염이 사라지고, 우리는 가톨릭이 남겨준 것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되었다. - 선택된 제사장제도!

 

루터는 설교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고수했다. 개혁자들도 카톨릭처럼 오직 '안수 받은 사역자'만 설교하고, 침례(세례) 주고, 주의 만찬을 인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로 안수는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되는 신적 은총의 특별한 기운을 사역자에게 제공했다. 비극적인 것은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이 교회에서 모든 지체가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아나뱁티스트들을 심하게 비난했다는 사실이다. 아나뱁티스트들은 모임에서 일어나 말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권리라고 믿었다. 그것은 성직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루터는 이것을 너무나 반대한 나머지, 그것이 "지옥의 구덩이"에서 나왔다고 했고, 그것의 죄를 범한 사람들은 사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요약하자면,  개혁자들은 안수가 교회 안에서 권위를 갖는 열쇠라는 개념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나님의 계시를 그분의 백성에게 전하는 것이 안수 받은 사역자의 사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역할을 위해 급여를 받았다.

 

가톨릭의 사제와 마찬가지로 개혁자들의 사역자도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유급 중재자. 죄를 사하는 중재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중재자였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옛적에 있었던 문제가 새로운 형식을 취했다. 용어는 바뀌었지만, 오류는 그대로 남았다. 17세기 청교도 저술가인 존 오웬과 토마스 굳윈은 루터와 캘빈과 마찬가지로 목사직을 하나님의 역할에 모든 권위의 초점을 맞추도록 인도했다. 그들은 목사가 '열쇠의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오직 목사만이 안수 받고 설교와 성례의 집전과 성서봉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목사만이 논리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성서원어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 이 두 부류는 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유능한 전문가여야 한다는 생각을 고수했다. 그러므로 목사들은 그들의 직책을 수행하려고 광범위한 학문의 수련과정을 거쳐야 했다.

 

사제에서 목사로

 

존 캘빈은 사역자를 칭할 때 사제라는 말을 쓰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목사라는 말을 선호했다. 캘빈의 생각엔 '목사'가 사역을 표현하는 말로서 가장 그럴 듯했다. 그는 성서가 예수 그리스도를 "양의 큰 목자"(히 13:20)라고 칭했기 때문에 그 말을 좋아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목사라는 사람에게서 신약성서의 감독을 회복하고 있다고 캘빈이 믿었다는 사실이다.

 

루터도 개신교의 새 사역자들을 사제라고 일컫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리는 사람 중에서 말씀과 성사를 주관할 사람들을 사제라고 칭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칭해서도 안 된다. 그들이 사제라고 불리게 된 까닭은 이방 사람들의 관습 때문이거나 유대 나라가 남긴 자취 때문이다. 그 결과는 교회에 크게 해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그 역시 이 직책을 일컫는 말로 설교자, 사역자 그리고 목사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츠빙글리와 마틴 부처도 목사라는 말을 선호했다. 그들은 그것에 관해 논문을 써서 널리 보급했다. 그 결과 그 용어는 개혁자의 교회들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개혁자들은 설교에 사로잡혀 있었으므로, 그들이 사역자를 일컫는 데 선호한 말은 설교자였다. 그리고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역자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18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설교자와 사역자라는 말은 빛을 잃었고 목사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이 영향은 루터교의 경건주의자들에게서 왔다. 그때부터 이 말이 기독교 주류 안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개혁자들은 목사를 교회의 실제적인 우두머리로 높여 놓았다. 캘빈에 의하면 "태양과 음식과 물이 영양을 공급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것보다, 목사의 직책이 지상에서 교회를 보존시키는 데 있어 더 필수적이다." 개혁자들은 목사가 신적 능력과 권위를 소유한다고 믿었다. 목사는 자기 이름으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캘빈은 더 나아가서, 사역자를 향한 모욕이나 조롱 행위를 심각한 국사법 위반으로 취급함으로써 목사의 우위를 더욱 강화시켰다. 캘빈이 무엇을 사역자의 모델로 삼은 것인지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은 별로 놀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사도 시대의 교회에서 모델을 따오지 않았고, 오히려 2세기 단일감독체제 방식을 본떴다. 이것은 다른 개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로마 가톨릭의 교회가 성서가 아닌 "인간이 고안해낸 것들" 위에 그 관습들을 정했다고 캘빈이 탄식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캘빈도 매한가지였다. 캘빈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과 성사를 주관하는 것이 참 교회의 특징이라고 가르쳤다. 그의 생각에는 설교와 침례(세례)와 성찬이 회중이 아닌 목사에 의해 수행되어야 했다. 개혁자들 모두에게 있어 사역자의 우선적인 역할은 설교하는 것이었다. 설교가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일요일에 세 번의 예배를 하는 루터의 독일식 미사에 가장 잘 반영되고 있다. 오전 다섯 시 또는 여섯 시에 그날의 서신서를 설교했고, 오전 여덟 시 또는 아홉 시의 대예배에서는 그날의 복음서에서 말씀을 전했다. 오후의 기도회에서의 설교는 구약성서를 기초로 했다.

 

루터도 캘빈처럼 목사를 구별되고 고귀한 직책으로 만들었다. 그가 천국의 열쇠는 모든 신자에게 속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의 사용은 교회에서 직책을 맡은 사람들에게 국한했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다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름으로 사역하려고 우리 중에서 택함을 받은 사역자들이고, 그들이 맡은 제사장으로서의 활동이 곧 우리의 사역입니다." 루터는 그가 거부했던 희생제사 제도를 믿는 가톨릭과는 결별했지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특별한 직책을 맡은 사람들에게 속했다는 것을 믿었다.

 

목사를 높이는 루터의 독특한 주장을 들어 보라: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기독교 설교자는 따로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역자이다. 그렇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요, 하나님이 보내신 바로 그 감독이요, 많은 사람의 구원자요, 그리스도 나라의 왕이고 왕자이다... 지상에서 그리고 이생에서 진실하고 믿음직한 성직자나 목사보다 더 고귀하고 숭고한 사람은 없다.“ 계속해서 루터의 말을 인용하면 "우리는 마치 목사가 자기 개인을 향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듯, 혼자서 그 말씀을 선포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는 우리 모두의 입이고, 우리는 다 그와 함께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모든 목사의 입이 그리스도의 입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목사의 말을 사람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당신은 루터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지는 이그나티우스의 메아리를 듣고 있다.

 

루터는 교회가 우선으로 ‘설교소’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회중은 하나님 말씀의 설교와 기도 없이 모여서는 안 된다. 그 시간이 아무리 짧더라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루터는 교회가 그저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믿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교회 건물을 '입의 집'이라고 불렀다. 또 그는 이런 경고 섞인 논리를 폈다: "귀는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신체기관이다." 이것이 개신교의 뿌리이다.

 

영혼의 치유

 

캘빈, 루터, 그리고 부처(Bucer)는 목사의 두 가지 주요 역할이 말씀의 선포(설교)와 성찬(성만찬)을 주관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캘빈과 부처는 거기에 제3의 요소를 가미시켰다. 그들은 회중을 돌보고 치유하는 임무가 목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을 가리켜 "영혼의 치유"라고 한다. 부처는 이 주제에 관한 뛰어난 책, True Cure of the Souls를 1538년에 집필했다.

 

"영혼의 치유"의 기원은 4세기와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의 가르침 속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 그레고리는 감독을 "목사"라고 불렀다. - 환자의 질병을 진단해서 약이나 수술의 처방을 내리는 영혼의 의사. 루터의 초기 추종자들도 영혼의 치유를 시행했다. 그러나 캘빈의 제네바에서는, 그것이 예술의 형태로 높여졌다. 회중의 가정을 방문하는 데에 목사 한 명과 장로 한 명이 요구되었다. 병자와 옥에 갇힌 사람을 위한 정기적인 방문도 시행되었다. 캘빈과 부처에게는, 목사가 단지 설교자나 성사의 주관자가 아니었다. 그는 "영혼의 치유자" 또는 "성직자"였다. 그의 임무는 치료하고, 치유하고, 상처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일이었다.

 

이 사상은 오늘날의 개신교에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그것은 현대의 목회 돌봄 사역, 목회 상담, 그리고 기독교 심리학의 개념에서 쉽게 발견된다. 현대 교회 안에서, 그렇게 돌봐야 하는 부담이 보통 한 사람(목사)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 (1세기에는 그것이 교회 전체와 '장로들'이라 불리는 경험 많은 사람 그룹의 어깨에 지워져 있었다.

 

결론

 

현대 목사는 21세기 기독교에서 가장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존재이다. 하지만, 성서에는 이 직책의 존재를 지지해주는 단 한 가닥의 증거도 없다. 오히려 오늘날의 목사는 이그나티우스와 시프리안에 의해 널리 퍼진 단일감독체제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감독은 지역 장로로 발전하였다. 중세의 장로는 가톨릭의 사제가 되었다. 종교개혁 때는 '설교자' 또는 '사역자'로 바뀌었고, 결국 개신교 전체가 목을 매는 '목사'가 탄생했다. 이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개신교 목사는 ‘약간만 개혁한 가톨릭의 사제’일 뿐이다.(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어떤 개인이 아닌 직책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무렵, 가톨릭 사제들에게는 7가지의 임무가 있었다. 설교, 성사, 양떼를 위한 기도, 절제되고 경건한 삶, 교회의식, 가난한 자의 구제, 그리고 병자 방문이 그것이다. 개신교 목사는 위의 모든 임무를 자신에게 지우고, 거기에 때대로 지역사회의 행사들에 가서 축사해 주는 것을 첨가했다.

 

저명한 시인 존 밀턴은 다음과 같은 그럴 듯한 표현을 했다: 

"새 장로는 옛 사제를 크게 썼을 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현대 목사는 옛 사제를 큰 글자로 썼을 뿐이다!

 

프랭크 바이올라, 조지 바나/ <이교에 물든 기독교: 현대 교회에서 행하는 관습의 뿌리를 찾아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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