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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렛일
민수기 4:34~49
“왜 나 같은 것을 하나님이 만드셨을까?”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 속 우렁이들이 신세 한탄을 합니다. 물고기처럼 날씬한 몸매와 지느러미가 없어 헤엄치지도 못하고, 연못 바닥에서 남이 먹다 버린 쓰레기와 배설물을 먹는 처지가 스스로 딱했던 모양입니다. 외모도 볼품없는 데다가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어디를 가건 느려 터져 제대로 된 대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우렁이의 절규입니다.
“우리 같은 것은 쓸모가 없어. 사는 게 죽는 만 못해.”
절망한 우렁이들은 먹이활동은 물론 일체의 물속 활동을 중단하고 깊은 시름에 빠졌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맑고 깨끗했던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뿌연 이끼가 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틀이 더 지나자 연못 속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탁해졌습니다. 위급함을 느낀 물고기들이 다급히 총회를 열었습니다. 힘이 센 버들치와 우아한 새미, 갈겨니, 참마자, 붕어, 납자루, 밀어, 모래무지, 송사리, 민물새우까지 모두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원인에 대한 열띤 토의가 이어졌습니다. 연못으로 들어오는 물줄기의 상류가 오염되었다는 주장도 나왔고, 낙엽이 쌓여 샘을 막았다며 대청소를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연못 물이 탁해진 것은 우렁이의 절망에 있다는 점을. 이를 확인한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 물고기들은 호소문을 써서 송사리를 물고기 대표로 뽑아 우렁이에게 보냈습니다.
“존귀하신 우렁이님,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 속 우리 물고기 일동은 우렁이님이 다시 전처럼 성실하고 근면하게 활동하여 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렁이님도 아시다시피 최근 연못 물의 혼탁은 우리가 그동안 우렁이님의 노고를 망각한 데에 그 이유가 있음을 자인하며 우리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렁이님의 삶을 존중하고 경애하며 응원하는 바입니다. 우렁이님은 우리 연못에서 가장 소중한 분임을 제발 잊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지목할 때 그 가치의 중요도와 목적성을 먼저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는 병을 고치는 의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대학교에서는 가르치는 교수의 역할이 으뜸입니다. 대양을 항해하는 배에는 선장이 가장 중심이고, 항공기는 조종사의 역할이 으뜸이고, 교회는 목사가 중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가 병원의 구성원들 앞에서 ‘당신들이 월급을 받고 일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나 때문이오. 나를 존중해주시오’라거나, 대학교에서 교수가 ‘내가 없으면 대학교가 무너집니다. 내가 가장 고귀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회의식이 둔한 곳에서는 그런 말이 일면 타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회의식이 민감한 곳에서 그런 말은 할 수 없습니다.
레위 자손들은 거룩한 일에 부름받았지만 그 일이 한결같이 고귀하고 늘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잡부처럼 소똥을 치우고, 짐꾼이 되기도 했습니다. 천해 보이는 허드렛일이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일입다. 생명공동체의 우열이 바뀌면 삶은 왜곡되고 인생은 팍팍해집니다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성실함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인생의 성공 여부와 미추가 결과보다 동기와 과정에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 찬송 218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https://www.youtube.com/watch?v=uZRK48vIyBk
2023년 1월 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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