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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1:18~25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가장 나쁜 점은 매사를 돈으로 환산한다는 점입니다. 세상에는 돈보다 귀한 가치가 많은 데도 돈을 최고 가치의 척도로 여기다 보니 인생과 공동체에 가치의 왜곡 현상이 나타납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이 있어 보이지만 세상을 좀 더 넓고 깊게 보면 그런 나눔 자체가 의미 없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오래전에 천성산 KTX 터널 공사에 대하여 ‘도룡뇽 보호’를 명분으로 반대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에 앞장선 지율스님은 모두 241일 동안 단식을 벌이며 공사를 막았고 그로 인하여 수백억 원의 국가적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그녀는 터널 공사로 천성산의 습지 등 생태계가 무너져 ‘도룡뇽이 살 수 없는 곳에는 사람도 살 수 없다’며 맞섰습니다. 나는 이 운동을 편리와 속도와 성과와 획일성이 강조되는 사회 현상에 대한 맞섬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터널도 있어야 합니다만 가능한 인간의 구조물은 최소화하여야 이 땅에서 우리는 오래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꿀벌은 미미한 곤충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꿀벌이 살 수 없는 곳에는 사람도 살 수 없습니다. 꿀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렁이가 없는 곳에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나무가 없는 곳에는 사람도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갯벌을 메워 농지를 만들며 인간 승리를 소리쳤던 우매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지를 자랑하는 슬픈 일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 하였다”(마 1:19 새번역). 성령님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요셉이 취한 행동에 대한 마태의 묘사입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사랑에 대한 배신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이 아닌 누구라도 분을 낼 만한 일입니다. 그 분노가 클수록 자신의 무고함이 강조될 사안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마리아가 받을 수치와 모욕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였습니다. 그후에 성령님이 요셉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고지하십니다(마 1:20~24). 요셉의 의로운 행동은 성령님의 고지보다 앞선 사려 깊은 행동입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동침하지 않았으며 아들을 낳자 이름을 ‘예수’로 지어 남편과 아버지로서 역할에 충실하였습니다.
마태는 요셉을 ‘의로운 사람’으로 부릅니다. 성경에서, 그리고 교회 역사에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구원의 조력자’로서 칭송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데 비하여 요셉에게는 별다른 칭찬이 인색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로 자기 가치를 가늠합니다. 공동체에서 부여한 위치와 역할로 인생을 평가합니다. 쌓은 경험과 경력이 화려하고 인맥이 두터울수록 훌륭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셉을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인생관을 배웁니다. 쓸모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도리어 쓸모없는 것이 가장 귀하다는 역설의 논리를 요셉에게서 배웁니다.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가치와 진실을 왜곡하는 성과주의와 편리주의에 매몰된 현실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읽는 안목 주시기를 빕니다. 무가치한 삶은 없습니다.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무지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를 무지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 찬송 104 곧 오소서 임마누엘 https://www.youtube.com/watch?v=cRcDg-speUE
2023. 1. 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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