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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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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에게 죄를 묻는 세상
마태복음 4:12~26
인류 공동체는 양심과 도덕이 주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악과 불의입니다. 상식보다 몰상식이 앞서고 따뜻한 인간미보다 사악한 권력욕이 더 강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보편적 인간애를 믿고 정의의 승리를 기다리는 일은 한마디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도태하지 않으려면 불의에 적당히 가담해야 합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듯 혼자 옳은척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올가미나 덫에 걸리고 맙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우울합니다. 도둑질과 사기 행각을 일삼는 이들이 권력을 틀어쥔 세상에서 과연 어떤 부모와 선생이 자녀와 학동에게 ‘정직’과 ‘성실’을 가르치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양심과 도덕과 정의와 진실이 모욕당하는 일은 오늘 우리 시대만의 슬픔이 아닙니다. 인류가 죄를 접하면서 시작된 이 비틀림 현상은 세상의 종말에 가서야 그칠 것이라고 생각하니 종말에 대한 소망이 강렬해지기보다 현실의 슬픔과 설움이 더 큽니다.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마 4:12). 의인이 불의한 이에게 농락당하는 일이 결국 일어났습니다. 나는 세례자 요한을 잡아 가둔 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무슨 죄목으로 세례자 요한을 잡아 가둔 것입니까? 요한을 잡아 가둔 불의한 이들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존재합니다. 그들은 없는 죄도 만드는 창조적 기술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죄란 출세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렇다 보니 원하는 죄가 나오지 않으면 있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 누명 씌워 억울한 사람 만드는 일을 예상사로 여깁니다. 불과 10년 전, 정보를 틀어쥔 이들과 사악한 검사들이 간첩을 조작하여 엄한 사람이 억울한 처지로 내몰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총지휘한 검사는 승승장구하여 지금도 권력 핵심부에서 또 다른 죄를 창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상을 주고, 상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벌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의식을 가진 자로 산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종말에 도래할 의의 승리를 믿으라고 가르치는 목사로서 자괴감을 심하게 느낍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4:13~14). 예수님은 요한의 붙잡힌 소식을 듣고도 가타부타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뭔가 한 말씀 속 시원하게 하셨으면 좋겠는데 침묵하십니다. 이 사실을 기록한 마태는 이를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로 해석하였습니다. 이 시점에 주님은 자신도 요한처럼 의로운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릴 것을 예견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의인에게 죄를 묻는 세상에서는 누구라도 개죽음에 이릅니다. 배를 타고 가다 죽고, 기분 전환 삼아 파티장에 갔다가도 죽습니다. 질서를 책임진 당국자의 사과는 언감생심입니다. 기득권에 밉보이거나 저항하면 누구라도 죽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갈릴리로 물러나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는 주님을 봅니다. 속 시원한 말을 듣고 싶지만, 주님의 침묵에 담긴 웅변을 배우는 시간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마뜩잖지만 아직은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이해하며 인내를 배울 뿐입니다.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인류 역사에서 의로운 이들의 의로운 대접을 받고, 불의한 자들에게 불의한 심판이 내리지 않는다고 불평하다가 내 불의를 보고 슬퍼합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 찬송 495 익은 곡식 거둘 자가 https://www.youtube.com/watch?v=_egbRCfARGk
2023. 1. 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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