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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마태복음 5:21~32
영국 작가 메리 셸리(1797~1851)가 19살의 나이에 발표한 『프랑켄슈타인』(1918)은 과학기술의 결과로 탄생한 괴물에 의하여 인류가 얼마나 불행해지는가를 보여줍니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오랜 연구 끝에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만들어진 생명체는 너무 흉측하여 박사는 도망치고 맙니다. 괴물은 사람과 친해지려고 하지만 흉측한 외모 때문에 좌절하자 자신을 창조한 박사에게 잔인한 복수를 결심합니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동생을 살해하고 친구와 그의 아내의 생명을 빼앗습니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의 짝을 만들어주면 멀리 떠나겠다고 제안하지만 새로 만들어질 피조물의 정체성에 불안을 느껴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인간사회와 어울릴 수 없는 괴물의 고독과 절규는 혐오와 폭력으로 발전하여 공포와 절망을 만듭니다. 이 소설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도덕과 가치의 붕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지만 남과 어울려 살 수 없는 괴물의 존재론적 한계를 통하여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반성을 촉구합니다. 무엇보다도 내재 된 인간의 욕망이 가져올 파탄을 보게 합니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다 하면 사람이 아닙니다.
폭력에는 행위로 이루어지는 폭력이 있는가 하면 행위로 구체화되지는 않지만 잠재된 폭력이 있습니다. 살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1~22). 마음의 분노는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법인데 행동화한 분노가 곧 살인이듯 언어로 표현된 분노 역시 살인에 해당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예수님은 두 적수가 법정을 향해 걷는 상상을 언급하면서 법정에 이르기 전에 화해할 것을 종용합니다. 화해하지 않으면 그들 중 한 사람은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마 5:25). 불행은 불행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자신이 옳더라도 불화를 막는 일에는 선수를 쳐야 합니다. 할 수 있다고 다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자기가 옳다고 해서 상대를 곤란한 형편에 이르게 하는 것 역시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전쟁을 부추기는 악한 세력들이 새겨들을 말입니다. 전쟁이야말로 죄의식 없는 가장 큰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화해의 역할을 맡겨주셨지만, 저희는 방관자가 되거나 문제를 야기하는 입장에 설 때가 많습니다. 사회와 민족과 시대의 화목자로 살 담대한 용기와 지혜와 큰 믿음을 주십시오.
● 찬송 425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vrNetYnsZJg
2023. 1. 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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