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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마태복음 7:13~20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함을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앙드레 지드(1869~1951)의 『좁은 문』에서 제롬의 사랑에 대한 알리사의 대답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만 알리사는 지상의 사랑을 외면하고 좁은 문을 통해 성취될 행복에 이르는 길을 걸으려고 하였습니다. 후에 알리사는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숨졌는데 그녀의 일기에는 “하나님이시여, 다시 한번 그분을 만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라고 씌여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 제롬을 사랑하였지만 하나님을 향한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하여 그 사랑을 외면한 것입니다.
지드는 프랑스 문학사에 거의 유일하게 칼뱅주의적 청교도 신앙을 가졌던 작가입니다. 지드는 이 작품을 통하여 자기희생의 허무함과 청교도적 금욕주의 신앙의 경직성에 대하여 반성적 성찰을 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사람의 행복을 억압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든 도덕과 윤리와 제도라는 것입니다. 지드는 자신의 작품과 사회 참여를 통하여 경직된 도덕과 규율의 부당함에 침묵하는 위선을 비판하였고, 힘의 숭배에 침묵하는 지성에 대하여 분노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위하여 끝까지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인생에는 수많은 길이 있는 것 같아도 두 길이 있을 뿐이라는 가르침입니다. 한쪽 아니면 다른 쪽이지 중간은 없다는 것이 주님의 의도이십니다. 넓은 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교만과 육신이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온갖 죄까지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허용적입니다. 좁은 문은 매우 비좁아서 자신의 탐심과 고집과 죄와 친구와 가족,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라도 버리지 않으면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어려운 길 걷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길은 편한 길, 쉬운 길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길, 남이 가지 않은 길, 험한 길을 뚜벅뚜벅 걷는 이가 있습니다. 나를 위한 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길, 순간을 위한 길이 아니라 영원을 위한 길, 더 나은 가치와 더 높은 질서를 위한 길 말입니다. 먼저는 주님이 그 길을 걸으셨고, 제자와 사도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험하고 고단한 길을 말없이 걷는 이들이 있어 세상에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은 어려운 그 길을 함께 걷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의미 있는 소명에는 자발적 헌신이 뒤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길이 고통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좁은 문을 통과한 길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 그리고 동행의 벗이 있습니다. 그 즐거움은 남이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부름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기저기서 그 길 걷는 벗들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고맙습니다.
● 찬송 521 구원으로 인도하는
2023. 2. 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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