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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마태복음 9:14~26
오늘 기독교는 역사적 배경과 신앙고백, 그리고 예배 의식에 따라 여러 분파가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처음 교회의 분열은 4~5세기 초대교회 시대 때 박해를 벗어난 교회가 신학과 교리와 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단으로 몰려 이탈해나간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 동로마제국의 수도가 건설되면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로마의 주교 레오 1세(400?~461)는 로마교회의 수위권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게르만족에 의한 서로마제국의 멸망 상황에서 침략자에게 ‘교회 관련 시설과 인명을 파괴하거나 살상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 사람은 죽이지 않으며, 포로를 고문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로마교회는 정치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적극적인 전도와 개종으로 교세를 확장하였습니다. 한편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교회도 동유럽과 슬라브족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활발히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십자군운동, 이콘에 대한 이해 등으로 불편해진 양 진영은 마침내 1054년에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가 서로를 파문하므로 동방교회(그리스정교회)와 서방교회(로마가톨릭교회)의 분열 상황을 맞았습니다. 그후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교회는 16세기에 이르러 우리가 흔히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또 한 번의 대분화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개혁교회는 루터파와 칼뱅파와 성공회, 그리고 재세례파로 분화되었고, 지금은 더 많은 분파를 형성하여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여러 형태의 종교집단이 있었습니다. 수리아 셀류커스왕조의 헬라화 정책에 반발한 마카비 혁명 때에 조직된 개혁 세력으로 모세 율법과 장로의 유전을 강조한 바리새파가 있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 사독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제사장직을 독점하며 산헤드린공회의 다수 석을 차지한 기득권층 사두개파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애국무장독립단체인 열심당과 금욕적 수도공동체 엣세네파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와 세례자 요한의 제자 그룹도 있었습니다.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마 9:14). 요한의 제자들이 주님을 찾아와 자기 공동체에서 중히 여기는 금식을 왜 예수님의 공동체에서는 간과하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 b)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요한의 제자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라면 적대감을 숨기지 않으며 경계하고 상대의 약점을 예의 주시할 것입니다. 역사와 신학과 의식의 차이로 분열의 길을 걸어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면 그것을 극복하여 공동의 고백과 공통의 의식을 위하여 연합, 또는 연대할 때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교회가 쇠락의 길을 걸을 때야말로 에큐메니칼 운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에큐메니칼운동을 폄훼하는 것은 무지의 소행이며 역사에 둔감한 자의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주님 닮기를 원합니다. 같은 생각은 반가워서 좋고 다른 생각은 공부할 기회로 삼겠습니다.
● 2023. 2. 8 수
댓글 '1'
김봉진 목사
마태복음 9:18-26절 예수님께만 닿아도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18절)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19절)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25절)
예수님은 방금 죽은 딸의 몸에 손을 얹어 살려 달라는 한 관리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가서 죽은 소녀를 살려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심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상황에서도 생명을 불어넣어 살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이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20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21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22절)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께 나아왔지만,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자로 간주되고 있었기에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이 여인이 완치된 것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주술적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라는 여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향하여 이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18절)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19절)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25절)
예수님은 방금 죽은 딸의 몸에 손을 얹어 살려 달라는 한 관리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가서 죽은 소녀를 살려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심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상황에서도 생명을 불어넣어 살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이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20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21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22절)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께 나아왔지만,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자로 간주되고 있었기에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이 여인이 완치된 것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주술적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라는 여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향하여 이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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