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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실망한 무리
마태복음 11:11~19
마음속에 늘 자리하여 흔들리지 않는 관념, 고착된 생각을 고정관념이라고 합니다. 고정관념은 성, 인종, 민족, 종교, 직업 등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고 다분히 감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거나 ‘부엌일은 여자가 하는 거야’, ‘혈액형이 A형은 어떻고, B형이면 어떻고 …’, ‘동성애자는 변태성욕자’, ‘유대인은 욕심쟁이’, ‘중국인은 음흉해’ 등 전혀 사실과 다른 구조화된 선입견과 편견을 갖게 합니다. 특정 시대나 사회나 문화가 갖는 사고방식이나 신념도 이에 포함하는데 종교와 이념이 가미되면 고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고정관념이 가진 폐해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개인의 특성이나 능력을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개인이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그의 개성과 능력을 특정 범주에 한정시키므로 다양성과 다원성은 물론 확장성도 폐쇄합니다. 고정관념은 편견과 차별의 원인이 되어 사회 발전의 저해 요인입니다.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할 때 반발하고 저항하므로 성숙을 더디게 하고 구성원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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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금욕적 삶을 살며 광야생활을 하는 요한을 가르켜 ‘귀신 들렸다’며(마 11:18) 삶의 재미를 모르는 광신자로 매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가르켜서는 ‘먹기를 탐하고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수군거렸습니다(마 11:19). 주님께서 사람들과 사귐을 갖고 잔치에도 참석하니 도덕적으로 방종한 자로 몰아 세웠습니다. 물론 단편이고 편견입니다. 그러나 한번 가진 편견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고쳐지기는커녕 편견의 극대화, 즉 고정관념화되고 나아가 확증편향에 귀착합니다. 객관성을 상실하고 병적 쏠림 현상에 이릅니다. 주님은 요한도 부정하고 예수님도 거부하는 백성을 가엽게 바라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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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마 11:17).
예수님은 그 시대를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로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 혼인 놀이를 하자’하면 다른 아이들은 ‘아니야. 오늘은 즐겁지가 않아’ 시큰둥합니다. 그러면 처음 아이가 ‘그러면 장례식 놀이를 할까’합니다. 아이들은 ‘우리는 그렇게 슬프지는 않아’하며 외면합니다.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의미가 공유되지 않고 재미를 찾아볼 수 없는 대화입니다. 그들은 요한에게도 실망하였고, 예수님에게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진리에 무지한 그들의 기득권 수호 의지가 그만큼 강했고,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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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요한과 예수를 제멋대로 판단하던 사람들과 결이 다르지만 실망한 이들이 오늘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가나안 성도’가 그들입니다. 가나안 성도는 교회에 대한 실망이 도를 넘었기 때문에 등장한 신(新) 출애굽 백성입니다. 교회가 주야장천 실망을 담금질할 때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이 이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교회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일종의 출애굽이며 종교개혁이며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자각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진심을 헤아려 희망을 이어갈 능력이 기성교회에 있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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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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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오늘 교회에 실망한 이들의 아픈 마음을 주님께서 헤아려주시기를 빕니다. 침묵으로 드리는 가나안 성도의 기도에 응답해주십시오.
● 찬송 : 258 샘물과 같은 보혈은
https://www.youtube.com/watch?v=pAHZOFUHJl0
2023. 2. 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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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진 목사
- 침노 당하는 천국(12~15절)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2절)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15절)
세례 요한과 함께 구약의 예언 시대가 끝나고, 예수님과 함께 성취의 시대가 왔습니다. 미래의 천국이 현재로 침입해 들어왔습니다. 그 나라에 항복하고 반응하는 자들은 사탄의 나라를 깨뜨리고 그 나라를 누리며, 하나님의 통치는 말씀에 순종하는 곳마다 강력하게 드러납니다. 들을 귀 있는 자가 아니면 깨닫지 못할 놀라운 소식입니다. 하늘나라를 누리는 일을 죽음 이후로 미루지 맙시다. 예수님이 지금 온 세상의 왕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도 순종을 통해 그 통치가 주는 안식, 치유, 해방, 평안, 화해와 정의를 누릴 수 있습니다.
- 반응하지 않는 세대(16~19절)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16절)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17절)
예수님은 복음에 반응하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의 냉담함을 장터 아이들의 비유를 통해 지적하십니다. 지나치게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심판을 선언하는 요한에 대해서는 귀신 들렸다고 비난하고, 세리나 죄인들과 자유롭게 식사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먹기를 탐하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내가 기준이 될 때 나와 다른 것은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말씀이 기준이 될 때 죄에 대해 울 수 있고 사죄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어그러진 세상 속에서도 말씀을 기준으로 성령의 다스림 속에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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