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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따로 빈들에
마태복음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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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마 14:13). 세례자 요한의 참수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마태는 그렇게 무미하고 담담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주님은 전에 헤롯에 의해 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주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고 질문하였을 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며 요한의 존재를 제자들에게 확실히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요한이 불의한 자들의 손에 억울하게 죽었으니 헤롯을 향하여 한마디 욕이라도 하실만한데 주님은 말을 아끼십니다. 주님은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셨고 다만 묵묵히 배를 타고 따로 빈들로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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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말 없는 행동이야말로 주님의 언어입니다. 주님은 지도자의 자격은 고사하고 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헤롯과 사람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취급하는 경망한 가치관과 그 불의함을 막지 못하는 제도,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악과 불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세태에 대하여 분노하는 대신 침묵하십니다. 욕이라도 한마디 하시면 시원할 듯한데 아무 말씀도 없으십니다. 이 깊은 침묵이야말로 주님의 웅변적인 언어입니다. 주님은 점점 다가오는 자신에 대한 반대가 가져올 결과를 알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자신도 요한처럼 죽임 당할 것을 직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이어진 오병이어 기적은 다른 복음서에도 기록하지만(막 6:14~44, 눅 9:7~17, 요6:1~15) 마태와 마가만 주님의 민망한 마음을 헤아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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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빈들을 향하는 주님에게 무리가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심중을 헤아리기는커녕 예수님에게 놀라운 기적을 보고 싶어 하는 무리, 자신의 질병과 아픔을 고침 받으려는 사람들, 덧거친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한 줄기 하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로 홀로 있고 싶은 주님의 심정보다 자기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물리치지 않고 가엽게 여겨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저녁이 되자 제자들에게 뜬금없이 무리의 식사를 해결하라고 명하십니다. 가난한 예수 공동체에 먹을 것이 없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예수님이 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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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긍휼(14)과 세상을 향한 교회의 책임(16), 그리고 창조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와 여자를 제외하고도 5000명이 배불리 먹고 12바구니가 남았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사건을 실제로 경험한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14:33 요6:14) 그때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예수 공동체는 불쌍한 무리에게 나눌 것이 있었지만 지금 부자가 된 교회는 사람들에게 희망은커녕 실망감만 나누어주는 것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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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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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시는 주님을 묵상합니다. 죽임 당함을 수용하는 그 아픈 마음을 헤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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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570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https://www.youtube.com/watch?v=QfIWuZlHLag
2023. 2. 27 월 #마태복음읽기 #세례자요한의죽음 #따로홀로 #나비생각
사진설명 : 피테르 브뤼헬 <세례자 요한의 설교>, 1566, 파인아트박물관,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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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진 목사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15절) 라고 말씀을 드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6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명령은 그 자체로는 이행할 수 없지만, 채우실 예수님을 의지하여 시행한다면 작은 나눔의 실천도 큰 기적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17절) 기적의 중심엔 예수님이 계셨지만, 그 시작은 누군가가 내놓은 오병이어였고, 그 나눔은 제자들을 통해 시행되었습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19절)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매'라는 네 가지 동사는 사복음서에서 오병이어뿐 아니라 칠병이어, 최후의 만찬 본문마다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오병이어는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영적인 살과 피가 되어 주심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축제입니다.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 이 천국의 식탁을 이어 가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떼어서 나누어 주신 양식을 우리 마음과 삶에 담고, 천국에서 누릴 진정한 배부름을 소망해야 합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20절)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21절)
예수님은 고작 한 사람의 한 끼 식사에 불과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헤아려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차고 넘치도록 후히 주시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혹 광야라도 두려워 말고 주님을 따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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