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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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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증인이 되느냐? 누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증인, 또는 종, 또는 사자냐? 진리와 생명과 성령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증인은 인간 자기가 나타내는 게 아니라 주님이 당신의 증인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낸다. 즉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가진 사람은 주님이 보내신 증인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는 것은 땅에서 생산된 땅의 소산이 아니고, 또한 세상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으로 가지는 것도 아니고, 또한 도를 닦아서 가지는 것도 아니다. 땅에서 나오는 것은, 세상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 앞에 앉고 서는 바탕이 없다. 그래서 주님 오셔서 길과 진리와 생명을 주신 거다. 교회는 이 면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교회를 일반단체처럼 생각하면 형벌감이다.
믿는 사람이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성격 성질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의 마음의 자세가 나온다. 창:에서 보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의 태도가 피 없는 제사, 즉 인본주의 세상주의로 드리는 예배는 마음속에 은혜를 갈망하는 게 없다. 이러면 하나의 종교인이 되면서 후손에게 불신성이 내려간다. 교회에서 예배의 태도가 바로 놓이지 않으면 이 사람의 신앙은 점점 내리막길이다.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 설 자리를 바로 알면 사는 길이 열리는 건데 이게 안 된다. 이 책임이 먼저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자들, 종들, 목사들에게 있다. 그리고 부모가 집에서 잘못하면 자식이 버릇이 안 잡힌다. 자녀교육은 첫째는 부모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창:에서 하나님께서 ‘먹으면 죽는다. 산다’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속화되고 타락된 부모는 자식에게 지혜지식을 길러주고 도덕성을 길러주는 것은 없이 무조건 ‘하라. 하지 마라’만 있다. 자식이 이런 교육만 받으면 모든 면에서 축소된다. 자기 축소는 자기 평생의 생활문제와 연결이 된다. 우리는 배우고 터득하며 자기를 잘 살펴야 한다. 자기를 잘 살피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살핀다. 살핀다는 것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주님의 증인에게는 성령님의 감화가 들어있다. 이것은 오늘날 흔히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과는 구별이 된다. 성령을 받으면 자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게 나온다. 이치가 나오고, 지혜가 나오고, 도덕성이 바르다. 잘못된 교회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무당 식이다. 이런 사람은 가정의 질서와 교회의 질서가 없고 인인 간의 연관 관계성의 질서가 없다. 무당은 악령류의 장난이다. 이런 것에 잡히면 일생이 다 날아간다.
주님의 증인은 사람이 인격적 성품적 영감적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실상화 되어있다. 그러니까 마음과 정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되어있고, 하나님의 말씀과 이치로 무장이 되어있는데, 이 생명의 질은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리고 증인이란 처음부터 주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인데, 이 말은 교회를 세운 창립 맴버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면서부터 선재적 그리스도로 계시면서 우리에게 가지셨던 주님의 마음과, 오신 후의 그분의 마음을 알고 계속 그분의 교훈을 따라가는 사람을 말한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는데, 주님의 전 생애는 죽어가는 것을 살리고 죽은 것을 살리셨는데, 이게 부활성이다. 사도바울은 뭐가 사는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한 거다. 사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은 죽는 것도 안다. 같은 이치로 옳은 것을 알아야 잘못된 것도 안다. 잘못된 것을 먼저 안다고 해서 옳은 것을 아는 게 아니다.
지금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옳은 것을 분별하지 못해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하라고 한 것을 안 하는 것이 죄인 줄은 알지만 자기 속에 하나님의 성품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 죄인 줄은 모른다. 그러나 이 죄가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큰 죄다.
계:에서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했는데, 사도요한을 통해 이 계시록을 준 지 2천 년이 흐르면서 교회 인도자들이 하나님의 처음 사랑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오늘날 교회가 이 모양이 된 거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신 거다. 이렇게 된 것은 주님의 종이라는 사람들이 증인 역할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는 진리본질은 없고 문화 예술적으로 나간다. 이것은 신앙이 아닌 놀이문화다. 교회가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지키지만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의 상황은 두 살 아래의 아이를 다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이 상황을 신앙 사상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성탄의 행사를 거창하게 하는 게 신앙인 줄 알고 있다. 우리는 성탄을 지키는 것보다 날마다 사는 것으로 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 삶 전체가 인격적 자체적으로 하나님과 관계성을 바로 놓고 살아야 한다.
처음 사랑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일반지식을 가지고 예수 믿으면 안 된다. 교회는 하늘의 지식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의 마음도 알고, 아들의 마음도 알고, 바른 신앙의 길로 나갈 수 있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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