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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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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라우마'란 과거의 어떤 사고 혹은 사건으로 인해 현재 정신적-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것을 뜻한다.
2. 굳이 따지자면,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겪은 트라우마는 딱 두 개다.
3. 하나는, 1987년 6월 하순에 서울 명동에서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하다가 세칭 '백골단'에게 붙들려 엄청나게 얻어터진 후 남대문 경찰서로 연행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심하게 폭행을 당했는지, 그 이후 한동안 '오토바이 헬멧' 쓴 사람만 봐도 가슴이 철렁해지곤 했었다. (백골단이 시위 진압할 때 헬멧을 썼음.)
4. 내가 겪은 혹은 겪고 있는 또 하나의 트라우마는, 태극기 성향의 개신교 목사들이나 신도들이 하도 나보고 좌파, 빨갱이 목사라고 비난을 하다 보니까, 낯선 개신교인들을 만날 때마다 나 스스로 경계심을 갖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이다.
5. 오늘 점심에 새로 임대할 만한 건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광화문에 있는 한 부동산 사장님과 약속을 잡고 만났는데, 사장님이 내 이름을 듣더니 대뜸 '혹시 목사님 아니세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왜 목사 같이 보이세요?'라고 되물으니, 이름이며, 생김새며, 목소리며, 딱 목사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맞습니다, 목사입니다'라고 답을 드렸더니, 엄청 좋아하면서, 본인도 교회 권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 말을 듣는 순간, 움칫했다.
혹시 이 사장님이 태극기 성향의 개신교인이어서 나를 물먹이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 교회를 출석하시냐고 물었더니, 오대식 목사님이 담임하는 덕소의 높은뜻정의교회를 나가신다고 하길래, 내가 빙그레 웃으면서 '거기 출석하시면 태극기 부대는 아니시겠네요'라고 했더니, 깔깔 웃으시면서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아무튼 오늘 만난 광화문의 부동산 사장님이 친절하게 잘 해주셨지만, 원하는 건물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6. 어젯 밤에 아현동과 신촌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혹시 임대 나온 건물이 없는지 알아보다가, 우연히 작은 건물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래서 건물주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나보고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길래, 기독교 신학서적을 만드는 출판사 대표라고 답을 했다.
그러자 그분이 자기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반가워하시는 것이었다.
그 순간, 또다시 내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내가 명색이 목사인데, 목사가 같은 개신교인을 만나면 반가운 게 아니라 걱정부터 하는 것이다.
이 분이, 내일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시고는, 오늘 오후까지 연락이 없길래, 혼자 속으로 '인터넷에서 나를 검색해서 좌파 빨갱이 목사란 표현을 보고 연락을 안 하는 것이려니'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건물주께서 본인이 출석하는 교회 담임목사님 한테 나에 대해서 물어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그랬더니,
글쎄 말이야,
그 목사님이 새물결플러스 정기독자이셨지 뭔가.
그러니 나에 대해서 나쁜 소리를 할 리가 만무하지.
그리고도 모자라,
그분이 아주 친한 지인 집사님 한테 혹시 '김요한이란 사람을 아냐?"고 물어봤는데,
글쎄 말이야,
그 지인 집사님도 새물결플러스 정기독자셨지 뭔가.
그러니 나에 대해서 절대로 나쁜 소리를 할 리가 만무하지.
7. 오늘 저녁에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세상이 참 좁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언제나 하는 말처럼,
착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또다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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