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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다음
마태복음 1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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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4:17 a).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비로소…”(16:21). 동일한 단어와 문장의 이 두 구절을 기준으로 마태복음을 셋으로 구분하여 1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2부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3부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승리로 나누기도 합니다. 4:17의 ‘이때’는 세례자 요한의 잡힘을 들은 때입니다. 그때부터 주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4:17) 전파하셨습니다. 16:21의 ‘이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가 있고 난 후입니다. 이때부터 주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16:21)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읽는 성경에는 깊이 묵상하고 헤아려야 할 많은 여백이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만 알 것이 아니라 그 배경과 여백에 담긴 의미를 읽는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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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나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 중의 하나, 죽은 세례자 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을 잘하는 랍비라고 보는 이들도 있었고, 무너져가는 유대를 다시 세울 정치인으로 보는 이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쉽지 않은 고백입니다. 주님은 그 고백이 ‘하나님 아버지’에 의한 고백임을 강조하십니다(16:17). 주님은 이런 고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적어도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제자들의 바른 신앙 때문입니다. 이 고백이 천국 문의 열쇠이자 하나님 나라 운동의 시발점입니다. 두 번째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고백이 없다면 주님은 다음 단계의 사역, 즉 대속의 절정인 십자가를 향한 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심 이런 고백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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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고백과 자각과 헌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지와 나태에서 벗어나 시대를 분변하고 하나님 나라 운동의 일선에 선 자로서 용기 있게 결단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런 고백과 결단은 성령님에 의존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망설이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의 고백은 교리적 암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리 하나를 더 안다고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몰라서 고백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믿음도 실천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은 헤롯을 ‘여우’(눅 13:32)로 불렀는데 우리는 악한 지도자를 ‘돼지’라고 부르지도 못합니다. 주님은 그 시대를 ‘악하고 음란’(16:4)하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이 시대를 ‘공정과 상식’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뼛속까지 에돔인이었던 헤롯은 지금 우리 앞에 뼛속까지 미신과 무지에 사로잡힌 사대주의자로 서 있습니다. 고백 없는 교회와 믿음 없는 교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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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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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바른 고백으로 이끄는 믿음을 주십시오. 고백 그다음을 살 용기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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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341 십자가를 내가 지고
https://www.youtube.com/watch?v=fJgg-HAf7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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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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