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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무와 신앙>
헬무트 틸리케가 참된 믿음을 튀빙겐 식물원의 야자나무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야자나무가 온실 밖으로 뻗을 만큼 성장 속도가 빨랐나 봅니다. 식물원 관계자들이 유리 지붕을 한 층 더 올렸지만, 얼마 안 돼 유리 덮개가 쓸모없어집니다. 관리가 힘들어지자 관계자들은 이 나무를 베어버릴지 아니면 옮겨 심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 끝에 ‘신앙도 이와 같다’고 설명한 대목이 기억납니다.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의미 있어 보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경건한 교리와 잘 짜진 프로그램 안에서 교인들을 교화하려고 애씁니다. 일종의 ‘경건과 신앙’이라는 이름의 유리 지붕입니다. 이건 모두 안전한 신앙을 위한 조치라고 말합니다. 햇빛을 잘 받고 밖에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나무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유리 벽을 만드는 것 같이, 교인들의 신앙을 보호하려고 온갖 장치로 제한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살아있는 야자나무를 완벽하게 둘러싸거나 제한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식물원 유리 덮개가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살아있는 신앙도 제한할 방법이 없습니다. 때가 도래하면 교회 관계자들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겁니다. 나무를 자르든지 아니면, 온실을 부수든지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뿌리 내린 신앙의 운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은 말씀과 함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가정에서 가지를 뻗어 창공을 향해 무한히 뻗어갑니다. 신앙은 특정한 장소, 특정 인물, 특정한 규칙에 매이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신앙은 그런 식으로 울타리를 넘는 성질이 있습니다. 때론 유리 덮개 너머로 자라는 모습에 관리가 안 될까 싶어 염려부터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은 언제나 우리가 만든 덮개 너머 새로운 세계로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확장 시켜 나갑니다. 성령은 사람이 구축한 틀을 넘어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힘을 경험하는 공동체가 참으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강림의 사건과 초대교회의 역사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증명합니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흔히 말합니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점점 교회에서 이탈하고, 교인은 줄고, 겉과 속이 다른 교인, 수준 이하의 가짜 그리스도인이 넘쳐납니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 사고 소식란에 기독교인 이야기가 나왔다하면 눈쌀부터 찡그리게 됩니다. 어디가서 교회 다닌다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설교대는 복음으로 넘쳐나지만, 정작 교인들은 죄책감만 더 커지고 교회 생활은 뭔가 불편합니다.
이런 때야말로 모험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이념과 틀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성령의 도움을 구합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믿어주고 품어주며, 그리스도 때문에 아무 조건 없이 타인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내어주고, 나에게 보상이 돌아오지 않을 중보 기도를 시도해 봅시다. 그 모험의 결과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기에 미리부터 겁나고 염려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울타리를 넘게 만드는 성령의 능력을 믿읍시다. 믿음은 이런 때 써먹으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말씀과 결합한 성령의 능력이 더 넓은 세계,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 새로운 교회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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