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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어린아이
마태복음 19: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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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나이에 걸맞지 않은 부자인 그는 산헤드린의회 의원이기도 하였으며 모세의 율법에 기초한 유대 전통에 충실한 자로서 매우 도덕적이고 모범 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행히 그에게는 영생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19:16 새번역). 그는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선을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몇 가지 계명을 언급하였지만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계명들은 이미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나에게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19:20)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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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젊은이의 자신감을 비난하지는 않으십니다. 다만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씀을 주십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19:21). 사실 구원이란 젊은이의 질문처럼 무엇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준행함으로 성취되지도 않으며, 소유를 팔아 자선한다고 획득되지도 않습니다. 젊은이의 질문도 구원에 대한 질문이 아니며, 주님의 말씀도 구원에 이르는 길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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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부자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요구를 하신 이유는 젊은이의 태도에서 기인합니다. 그는 선에 대하여, 또 율법에 대하여 경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계명이 내포하고 있는 총체적인 실체를 젊은이 앞에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요구는 단순히 계명의 이행이 아니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19:21)로 이어집니다. ‘재산 포기’는 누구나 따라야 할 보편적인 명령이 아니라 이 젊은이가 주님을 따르기 전에 청산해야 할 한 조건이었습니다. 젊은이는 재산과 주님의 명령 중 하나를 택하라는 강한 요구를 받자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영생을 유업으로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좌절은 더 컸을 것입니다. 주님의 극단적인 요구를 따르지 않고도 율법을 이루고, 영생을 상속할 수는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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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가 떠난 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재물 자체를 비난하지 않으셨지만 천국에 이르는 장애물인 점을 환기시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부자는 항상 재물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래서 부자의 천국행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놀라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19:25) 묻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답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19:26). 이 말씀이 바로 답입니다. 구원이란 인간의 능력과 인간의 노력 여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부자가 가는 나라가 아니라 어린아이가 가는 나라입니다(마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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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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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은총으로만 구원에 이름을 믿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은총으로 임하는 구원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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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218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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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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