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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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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 17년 전 일이다.
당시 내가 속한 교단 내에서 1천 명 이상 운집하는 교회를 담임하는 40대 목사 여럿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자전거를 타고 식사도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게도 참가를 권유했다.
나는 원래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어서 그런 모임에 나갈 마음이 없었지만, 그 모임을 주도하는 목사들이 모두 신학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어서 마지 못해 두 번, 그러니까 한 달에 한 번씩 2개월 간 참석했다.
그리고 그 모임에 두 번 다시 안 나갔다.
내가 신학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목사들과 거리를 두게 된 이유는,
그 모임에서 나누는 대화란 것이 전부 교회 성장 기법, 설교 스킬, 그리고 이다음에 50대가 되면 총회 정치를 해보자는 관심사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화 중간 중간 내가 끼어들어서, '우리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교회를 개혁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총회를 갱신할 수 있을지, 신학교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그리고 교회가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그런 대화를 나누자고 하면, 그들은 불편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서 이 모임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구나, 싶어, 그다음부터 발길을 끊었다.
2.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이후에도 많은 중대형 교회 목사들이 나와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해보자는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 제안에 진지하게 반응하지를 않았는데, 그 까닭은 역시 위에 적은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3. 목사들의 세계에 오래 있을 수록, 목사들과 교분을 오래 나눌 수록, 나는 목사들에 대한 염증이 더 커지는 경험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나와 그들이 기질상, 성향상, 잘 안 맞아서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눈에 비친 많은 중대형 교회 목사들은 참으로 위선적으로 보였는데, 그들은 겉으로는 매우 젠틀하고 다정다감한듯 보이나, 그러나 한 커플 벗기고 더 깊숙히 들어가 교분을 나눠보면 거의 예외 없이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내가 이름이 조금이라도 알려진 목사들과의 만남이나 동역을 꺼리는 이유는,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정의를 실천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는 겁을 먹으면서도 어떻게든 자기 이름을 알리는 일에는 끝없는 집착과 탐욕을 드러내기 때문이었다.
4. 안정된 삶을 영위하며 안정된 목회를 구가하는 목사들과 거리를 두다 보니, 즉 주류인 사람들과 거리를 두다 보니, 결국 나는 점점 더 비주류로 전락하는 경험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본다.
그리고 내가 비주류(?)가 되다 보니, 자연스레 내 주변에는 비주류 목사들이 넘쳐난다.
건축현장에서 몸으로 떼우며 식구들 끼니값을 버는 목사,
오토바이를 몰며 음식 배달을 하는 목사,
학원에서 가르치며 예배당 월세 값을 벌려고 발버둥치는 목사,
돈이 되는 알바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다 달려드는 목사 등등.
5. 솔직히 이런 목사들을 가까이 하면,
인간적으로는 내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매번 식사도 내가 사야 하고, 커피값도 내가 내야 하고, 책도 내가 선물해야 하고, 봉투에 5만원 짜리 몇 장 넣어서 몰래 찔러주는 것도 전부 내 몫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고단하게 사는 목사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책임감(?)을 느낀다.
이들의 손을 잡고 내가 따뜻한 말로 기도라도 해줄라면,
그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흐른다.
내가 1만원 짜리 순대국이라도 사줄라면,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정말 맛있게 먹는다.
새로 나온 신학서적을 선물해주면,
마치 청혼 예물이라도 받은 듯 감개무량해 한다.
이런 살가운 풍경은 뱃가죽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큰 교회 목사들에게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몇 번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내가 제거되지 말고 어떻게든 잘 생존해야겠다,
거세당하지 말고 어떻게든 잘 버텨야겠다,
망하지 말고 어떻게든 잘 살아남아야겠다.
나를 죽이려는 놈들 뜻대로 되지 말아야겠다.
그래야
앞으로도 꾸준히 내 주변에서 밥벌이의 고단함을 온 몸으로 떼우며 버티고 있는 가난한 목사님들에게,
내가 작은 위로와 소망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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