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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성공
마태복음 20: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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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무엇이 성공인지 몰라합니다. 규모가 커지고,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사람이 많이 모이고, 헌금 액이 커지고, 여기저기 선교사업을 많이 하는 것을 목회적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생각과 기대와 다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은 사실 실패하는 지름길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 같은 실패가 있고, 실패 같은 성공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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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실패에 대하여 이미 두 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16:21).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17:22~23). 그리고 본문에서 세 번째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20:17~19).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좀 더 구체화시키고 있습니다. 17:22의 ‘사람들’은 ‘이방인’으로 묘사하므로 유대인의 손을 빌려 로마인에 의해 수난받아 처형당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마태는 한번더 마태복음 26:1~5에서 주님의 고난과 실패를 언급합니다. 이렇듯 마태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네 번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을 준비시키고자 하는 주님의 의도이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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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마태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을 찾아와 두 아들의 높은 자리를 요구하므로 제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 장면을 묘사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갈보리 십자가까지 따라갔던 여인으로(27:56) 살로메(막 15:40)로 알려집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0:21). 그녀는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과 그 영광의 날이 임박했음을 인지하는 놀라운 믿음의 통찰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믿음에 터하여서도 이기적이고 세속적 욕망에 매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의 태도로 부적절하지만 한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할 만합니다. 이 일로 다른 제자들은 분개하여 다툼이 생겼습니다. 아직도 제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수난과 실패의 의미를 깨닫기에 시간이 일렀습니다. 진리를 듣는다고 다 깨닫는 것이 아니라 숙성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어미의 부탁의 당사자인 야고보는 헤롯에 의하여 순교 당하였고(행 12:2), 요한은 말년에 유배지에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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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개인의 성공이 전체의 실패를 가져온 경우가 많습니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성공은 인류를 불행하게 하고 역사를 후퇴시켰습니다. 탐욕스러운 재벌의 성공 뒤에는 가련한 노동자의 피가 배어있습니다. 성공, 함부로 할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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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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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주님의 말씀으로 정하고 따르겠습니다. 이 시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이 기준에 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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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82 성부의 어린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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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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