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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청소부 예수?
마태복음 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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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을 유지하는 일은 개인이든, 사회든, 역사든, 종교든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오물을 뒤집어쓰고 더럽고 불결한 걸레로 집 안을 청소하면 하나 마나입니다. 아니 하나 마나가 아니라 더 더러워집니다. 깨끗이 한다고 하는 일이 더 더럽히는 경우가 있고, 개혁의 이름으로 구태를 확장하는 일도 생깁니다. 불법을 정죄한다며 정의를 왜곡하고,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 불사를 소리치기도 합니다. 다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그렇습니다. 할만한 사람이 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될 사람이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탁월한 지혜와 훌륭한 인품을 갖춘 사람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거리를 둡니다. 상대적으로 깨끗하면서도 능력이 있는 사람은 어이없게도 경쟁에서 밀립니다. 가시나무 같은 쓸모없는 것들만 자기 세상 만난 듯 우쭐거립니다. 그러니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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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성전을 청소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뵙는 장소입니다. 거룩하고 위엄이 서린 곳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인간의 이권이 개입하고, 기득권과의 유착을 통하여 탐욕이 스며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장소에 편의라는 명분으로 인간의 욕망이 들어선 셈입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먼 곳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순례길을 나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서는 제물을 데리고 올 수 없고, 성전세를 바치기 위해서는 성전 모퉁이에서 제물을 사야 하고, 환전하여야 했습니다. 그 일이 뭐가 잘못이냐고 대거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욕망과 이권이 서려있고 성전의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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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화가 안드레이 미로노프1975~ 가 <성전에서 상인을 추방하는 예수>2012를 그렸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분노하신 주님의 모습이 역력합니다. 플랑드르 화가 야고프 요르단스1593~1678도 이를 그렸습니다. 성전에는 양과 소와 비둘기는 물론 닭과 나귀, 심지어 개도 있습니다. 상인은 의자에서 넘어지고 탁자에서는 돈이 쏟아졌습니다. 장사꾼들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이제껏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성전의 높은 사람들에게 뒷돈을 대고 하는 일이어서 돈 버는 일이란 땅 짚고 헤엄치기였습니다. 종교와 결탁한 상술이야말로 가장 쉬운 돈벌이입니다. 성전 지도자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엮어 예수를 죽일까를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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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장마당이 된 성전을 주님은 ‘강도의 소굴’(21:13)로 인식하셨습니다. 주님의 이런 과격한 행동은 ‘성전 개혁’이 아니라 ‘성전 척결’입니다. 죄를 사하는 기능을 가진 건물로서의 성전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주님께서 성전이 되실 터이니 예루살렘 성전은 그 사명을 다한 셈입니다. 이제 역사에서 퇴장시켜야 했습니다. 주님은 단순한 청소부가 아니라 과격한 파괴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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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오늘의 교회를 어떻게 보실까요? 거룩은 없고 무사와 안일만 있는 교회, 의와 공평의 기도는 사라지고 부요와 평안을 비는 소리는 커지는 교회, 진리를 추구하기보다 성공을 좇는 교회를 주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복채종교가 달리 없습니다. 특별은총의 기독교와 일반은총의 종교 사이에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습니다. 이런 교회는 있어도 그만이지만 없어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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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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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교회가 최근에 청소된 지 500년도 더 지났습니다. 때가 묻고, 왜곡되어 장마당이 된 듯합니다. 성전을 헐러 오신 과격한 주님을 바라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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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10 시온 성과 같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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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야고프 요르단스 <성전에서 장사꾼을 쫓아내시는 예수님> 캔버스에 오일, 1650, 288×436cm, 루브르박물관, 파리
안드레이 미로노프 <성전에서 장사꾼을 쫓아내시는 예수님> 2012
티소 <성전에서 장사꾼을 쫓아내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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