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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마태복음 23:13~28
주님은 죄인과 병든 자 앞에서는 한없이 자애로우시지만, 권력자와 스스로 잘난 척하는 자들에게는 추상같습니다. 헤롯을 향하여 ‘여우’라고 욕설을 내뱉으셨던 주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새인을 향하여 ‘위선자’라는 모욕적 언사를 쏟아내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에 가장 거친 표현입니다. 그것도 반복하는 말씀이니 거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주님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를 일곱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13, 15, 16, 23, 25, 27, 29). 주님의 말씀에는 심오한 진리가 담겨있습니다만 특히 이 말씀에는 주님의 의지가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곱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실 리가 없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방해하고 가로막는 자들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신앙과 신학의 전문가로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가장 해박한 신학지식을 가진 이들이 정작 하나님 나라를 막는다는 점은 역설이어도 너무 서글픕니다.
그들은 천국 문 앞에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교인 한 사람을 어렵게 찾으면 자신들보다 배나 악한 지옥 일꾼을 만듭니다. 허튼 맹세로 하나님을 기만하기를 예사로이 합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등 무엇이 더 소중한 가치인지 모릅니다.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속은 음흉하고 더럽습니다.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면서도 겉으로 아름답게 꾸며 자신과 이웃을 속이고 하나님 기망을 예사로이 합니다.
본문을 읽으며 얼굴이 붉어져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영락없는 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단테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편에 서기 위하여,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제자의 자세로 걷는 열정의 순례길이 마땅히 나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길에 악이 함께 한다는 사실에 소스라칩니다. 생각해보니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의 만족은 불의와 함께하며, 나의 불평은 악에 기생합니다. 모든 행동에 위선이 가득하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나아 보입니다. 수없이 쏜 화살이 과녁을 맞춘 적도 없으니 여기서 그만둔들 어떻겠습니까?
미국 시인 랄프 월도 에머슨이 전하는 성공의 길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일. 그리고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태양을 향해 서면 그림자가 뒤로 드리우듯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걸음에 음영이 짙습니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서 ‘미워졌다 가엾어졌다’를 반복하는 우물 속 사나이가 바로 납니다.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태양을 향해 설 때 뒤로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처럼 주님을 향한 내 의지의 이면에 악이 있음을 느낍니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이 악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찬송 : 426 이 죄인을 완전케 하시옵고 https://www.youtube.com/watch?v=EGHMhMFNNAE
2023. 3. 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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