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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종말의 때
마태복음 24: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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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올 종말의 환란을 암시하십니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에 대하여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24:21)로 표현하십니다. 전무후무한 끔찍한 일이 일상이 되는 시대가 종말의 때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24:15~16). 빛과 소금의 사명을 따라 세상을 변혁시키는 존재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한계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지금 여기에 실현하려는 천국 운동이 더 이상 진전을 이룰 수 없는 때입니다. 그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변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역사에서 그런 일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일상의 삶을 포기하고 카타콤의 삶을 살아야 했고, 16세기 이후에 프랑스 위그노도 광야교회를 경험하였고, 지금도 핍박받는 현실 앞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있습니다. 종말의 환란은 임박한 미래의 한 시점이기도 하지만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반 하나님 운동의 결정체일 수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피력합니다. 오늘 이 땅에서 상식과 공정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몰상식과 불평등 역시 반하나님운동의 한 모습은 아닐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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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24:17~18). 이 말씀의 병행구절인 누가복음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눅 17:31). 그리고 누가는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이 말씀이 마태복음에서는 생략됩니다. 여기에서 ‘롯의 처’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할 때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악인들과 함께 멸망에 이른 자입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창세기 19장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으로 멸망 당한 이유는 도덕적 타락이나 성적 방종 때문만이 아닙니다. 보다 근본 되는 멸망의 이유는 대책 없는 나그네를 선대하는 하나님 백성의 윤리적 지향과 가치의 소중함을 버렸다는 데에 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나그네의 모습으로 소돔을 방문한 하나님의 천사를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롯만이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두 나그네를 자기 즐거움의 도구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구원의 메시지를 듣고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창 19:14). 롯의 처는 멸망 당하는 이들의 가치관에 동조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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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백안시하고, 남의 고통을 자기 즐거움으로 삼는 때가 종말의 때입니다. 그런 가치관을 흠모하여 자신과 동일시하는 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종말은 미래의 어느 시점일 수도 있지만 이미 지난 날 인류가 무수히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어떤 자세로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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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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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종말은 먼 훗날 어느 시점이 아니라 지금 여기입니다. 제게서 사랑이 식어지고 하나님 나라 가치가 무시되고 그 지향성이 멈출 때입니다. 종말을 살아갈 믿음과 사랑의 힘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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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179 주 예수의 강림이 https://www.youtube.com/watch?v=j5FJPTexm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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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26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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