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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마태복음 24: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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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한 작은 아파트에 네 남매와 젊은 엄마가 이사를 옵니다. 아빠가 각각 다른 아이들의 엄마는 집주인을 속이기 위해 두 아이를 짐 속에 숨겨 들여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엄마는 직장을 다니며 아직도 남자를 찾아다닙니다. 자신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엄마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엄마는 약간의 돈을 남기고 집을 떠납니다. 열네 살 된 장남은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엄마가 한번 집에 잠깐 다녀갔지만 그후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엄마에게서 오던 돈도 끊겼습니다.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얻어온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전기와 수도도 끊깁니다. 그러던 중 막내 동생이 죽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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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읽다가 왜 이 슬프고 비통한 영화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주님이 임하시는 때를 ‘아무도 모른다’신 말씀 때문인 모양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세상 모든 아이가 사랑 속에 보호받으며 자라야 합니다. 아니 아이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인류는 자신에게 품부된 삶을 마땅히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방해하거나 금하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마지막 때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 사이에도 불신과 배신이 차고 넘치고 증오와 싸움이 그치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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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과 그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날과 그때’를 모른다는 것이 우리를 의심과 모호함에 빠지게 하기보다 성실과 인내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임재의 날을 모르는 것은 은총입니다. 천국은 벼락치기 공부해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계시를 따르는 성실한 이에게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구원을 함부로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24:40~41).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1836~1902)가 <맷돌질하는 두 여인>(1886~1894)을 그렸습니다. 그는 많은 성경 이야기를 화폭에 담은 성서 화가인데 그의 작품 속 맷돌을 돌리는 두 여인에게서 구원과 관련하여 특이하게 다른 점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티소는 데려감에 이르는 한 여인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렸습니다. 여인은 경이로운 표정을 지으며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이 그림이 옳다면 자기 구원을 함부로 확신하여 절대화하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날과 그때뿐만 아니라 구원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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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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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성경 말씀에 터하여 구원 문제를 세심히 살펴야 하지만 함부로 절대화하는 우를 범치 않겠습니다. 그저 성실과 인내를 살며 은총을 바랄 뿐입니다. 아는 것은 없고, 모르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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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595 나 맡은 본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qFgko899Nq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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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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