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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 왼편?
마태복음 25: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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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편을 갈랐습니다. 오른편과 왼편을 갈랐고, 양과 염소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해있느냐를 매우 중요하고 생각합니다. 안전을 담보하기도 하고, 위험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의 혼란과 이념 대립이 극대화되는 상황에서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민족의 경우는 소속감이 안전의 중요한 척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친일 행보를 일삼는 정부에서 ‘간첩보다 친일이 낫다’거나 ‘친일보다 간첩이 더 무섭다’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거침없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역사 정의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을 미래의 협력자로만 보는 입장에서는 과거 우리 민족이 입은 모욕과 억압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때 항일운동에 참여하여 생명을 희생하고 재산을 찬탈당한 일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런 이유로 더 중요한 미래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반일로 정치적 이득을 챙긴다’며 정치적 상대방을 비난합니다. 사실 ‘민족’이나 ‘애국’은 보수 우익의 어젠다인데 그런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습니다. 단지 기득권을 더 오래 탄탄하게 누리려는 매국노들의 수작 이상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역사 정의를 외면하면서 상대에게 역사 왜곡을 시정하라고 하면 개가 풀 뜯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단재의 말을 되새겨야 합니다. 역사 정의는 미래를 거부하는 붉은 등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파란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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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종말 시점에 대한 세 가지 비유를 마치신 후 곧 준엄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의인과 악인이 섞여 살고,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어 악인이 형통하는 경우가 많고, 의인이 악인에게 능욕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선과 악, 또는 정의와 불의의 위치가 바뀌어서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고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심판 때에는 모든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 정상의 질서를 되찾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판은 의의 최종 승리이자 그 길을 오롯이 산 의인의 눈물을 씻어주는 감격의 날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상을 받는 의인과 벌을 받는 악인이 다같이 그 이유를 몰라 합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25:35~36). 의인과 악인들이 모두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고 반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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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근거는 ‘무시해도 될 만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태도’입니다. 주님은 그런 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40). 주님은 심판과 구원의 엄중한 자리에서 예정이나 은총 여부를 조건 삼지 않으십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일입니다. 지금 당신은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잊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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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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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오른편과 왼편, 또는 양과 염소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몰상식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편싸움을 그치고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겠습니다. 선행은 빨리 잊고 실수는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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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463 신자되기 원합니다
그림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북한 화가의 <양치기 소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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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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