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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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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세상을 구원합니다
마태복음 26: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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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26:18). 성경에는 이 사실과 관련하여 부연 기록이 없고 병행구절에도 그 내막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을 때면 여러 가지 상상을 합니다. 예루살렘 성안에 사는 돌쇠 아버지가 지난밤에 천사로부터 ‘내일 너를 찾는 이가 있으리니 너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계시를 받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다 세상을 뜬 갑순이 할아버지가 생전에 후손들에게 ‘우리 집에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귀한 손님이 유월절에 오실 터인데 너희는 손님 일행을 위하여 유월절 잔치를 열어 정중히 접대하여라’는 유언을 하여 매해 유월절마다 특심하게 기다리던 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기 예수님을 알아본 시몬과 안나의 후손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전해준 이야기를 마음에 간직하며 자신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메시아를 대면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주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평생 남에게 해를 끼치며 자기 탐욕의 삶을 살던 못된 이가 먼발치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회개하였습니다. 눈물로 개과천선을 다짐한 그가 생전 처음 착한 일을 결심한 날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성전에 갔다가 나사렛 청년이 채찍을 들고 성전과 성전의 기득권자들을 호통치시는 모습을 보고 ‘아, 이분이 구약에서 예언하신 메시아구나’를 한눈에 깨닫고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 할 일을 도모하던 경건한 유대인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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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도 유사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스가랴의 예언에 의하면 메시아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겸손을 상징하는 나귀 새끼를 타십니다(슥 9:9). 주님은 이에 응하기 위하여 한 마을로 두 제자를 보내 묶여있는 나귀의 새끼를 끌고 오라시며 만일 누가 묻거든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21:3)고 말씀하십니다. 뜬금없는 말씀이지만 제자들은 말씀대로 나귀 새끼를 끌고 왔고, 주님은 그것을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성경에 이와 관련한 세세한 기록은 없지만 상상의 날개를 펴면 아주 아름다운 동화가 만들어질 듯합니다. 성경은 약속과 성취라는 거대한 내러티브입니다. 되는대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지향을 갖춘 거대한 서사입니다. 그래서 성경 이야기에는 세상과 인류를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오늘 교회의 쇠퇴 현상은 이야기의 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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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제자들은 그렇게 하여서 유월절 식탁에 앉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상징하는 떡과 잔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26:21)며 제자의 배반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장면을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 게가 그렸습니다. 그의 <최후의 만찬>1863에는 빛을 등진 가롯 유다의 탐욕스러운 그림자가 놀라는 제자들과 대조됩니다. 유다는 스스로 빛에서 이탈합니다. 그중에도 오직 주님만이 슬프도록 평화로우십니다. 이야기는 격랑에 휩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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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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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복음은 인류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변함없는 그 이야기를 잇겠습니다. 이야기를 삶으로 번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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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232 유월절 때가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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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니콜라이 게 <마지막 만찬> 부분, 1863, 캔버스에 유채, 283×382cm, 러시아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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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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