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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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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계 7장 4절-8절을 보면 14만 4천 명의 인 맞은 자의 숫자가 나오는데, 이 14만 4천을 이스라엘 12지파로 나누면 각 지파당 1만 2천 명이 된다. 14만 4천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고, 신학적으로 사죄 칭의 새 생명으로 기본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즉 천국에 들어가기로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본다. 그런데 7장 9절-14절을 보면 앞에서 말한 구원 얻은 사람 외에 많은 환난을 받고 구원을 얻은 더 많은 사람이 나온다.
나는 14만 4천 명과 환난을 받고 구원 얻은 많은 사람을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이 환난을 통해 이룰구원을 이뤄가는 면으로 해석한다. ‘이스라엘’ 하면 천국 백성인데,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축복만 한 게 아니라 저주를 한 자식도 있으니 이것은 열두 아들들이 천국 백성이지만 이룰구원 면에서 신앙의 성질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야곱의 축복과 저주는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이 이룰구원을 이뤄가는 면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거다.
이것을 지금의 우리로 보면 누구든 예수를 믿는다면 기본구원을 얻은 거고, 그러나 각 성도의 신앙의 성질을 이룰구원을 놓고 영의 눈으로 보면 어떤 족속은(어떤 사람은) 목회의 성질을 띠고 있고, 어떤 족속은 장사 쪽으로 나가는 족속이 있고, 어떤 족속은 기술이나 관원 등등으로 나가는 성질이 있는 거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중에 로마로 다니면서 자주 장사를 하는 루디아라는 여자도 있고, 관원도 있고,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사람 중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하는 면으로 선택된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은 다 기본구원을 얻은 상태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와 현실에서 이룰구원을 이뤄간 거다. 영의 눈으로 보면 구원 얻은 우리 속에도 기본구원과 이룰구원의 두 가지 성질이 활동하고 있다.
이스라엘 열두 족속의 산하에 많은 사람이 태어났는데, 이들이 이스라엘 안에서만 살았느냐?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예수님 부활 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환난을 만나서 고린도로나 로마 등으로 도망을 갔다. 그런데 구원 얻은 이 사람들의 성격이 각각 다르다. 예수 믿는 우리는 영적으로 보면 영적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의 진리생명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어느 곳에 살더라도 영적 이스라엘이다. 육적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을 알게 하는 비유요 비사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신앙의 도리와 이치를 깨닫게 하는 비유와 비사로 쓰신다. 임시적인 것을 가져와서 영원한 것을 깨닫게 하신다. 성경 전부가 그렇다.
14만 4천 명을 크게 놓고 보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는 틀 안에 들어가는 거다. 그다음에 이 기본구원을 전제하고 열두 아들의 성격과 성질이 각각 다르듯이 오늘날 교인들도 영의 눈으로 보면 각자가 열두 아들의 성질이 들어있어서 각자마다 직업이나 상황에 따라 구원을 이루며 사는 거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짐승을 길렀고, 이 짐승으로 가군을 믿음의 사람으로 길렀고, 조카가 잡혀갔을 때 가군을 데리고 가서 구원해 냈는데, 이게 다 이룰구원을 말해주는 거다.
이렇게 볼 때 14만 4천 명이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을 말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열두 족속의 이름을 다 말한 후에 14만 4천 명 외의 환난을 이기고 구원 얻은 사람을 말한 것은 14만 4천 명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은 각자가 진리본질에서 이탈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의 성격대로 이룰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지 않으면 열두 족속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축복과 저주를 한 이유가 해석이 안 된다.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환난을 통과할 때 영능의 실력이 있는 사람은 이기고 나오고, 영능의 실력이 없으면 사회생활도 그렇고 믿음생활도 그렇고 항상 얻어맞게 된다. 이런 면에서 자기의 가장 큰 원수는 남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다. 간단히 말하면 만들어지지 못한 자기의 성격과 성질이 자기의 원수다.
예수를 믿으면서 주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나 누구를 만났을 때 만들어지지 못한 성격과 성질이 푹푹 튀어나온다. 대화를 해도 그렇고, 장사를 해도 그렇고, 직장생활을 해도 그렇고, 다듬어지지 못한 게 자기 속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이것을 자기의 원수로 알아야 고칠 수 있다.
인격을 가진 인간에게는 도덕성이 있는데, 특히 믿는 우리에게는 신적인 도덕성이 있다. 안 믿는 사람들의 도덕성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모두 타락이 되어서 이 도덕성은 항상 남을 본다. 자기가 죄를 지어놓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떠넘긴다. 그러나 신적인 도덕성은 다른 사람의 잘못된 것을 보고 자기를 돌아보며 고쳐나간다. 항상 남의 잘못만 보고 지적하는 사람은 마음이 좁고 하나님의 은혜를 못 받는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속을 구별 분별한다. 하나님 앞에서 성격과 성질이 고쳐져야 하나님께서 붙들어 쓰신다. 성령님께서 붙잡고 쓰신다. 마음의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 위로부터 성령이 내려온다. 성령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거지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성격과 성질이 말씀의 사람으로 바뀌고, 그다음에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하나님을 높인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의 말을 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하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이 소리를 못 알아듣는다. 예수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높이는 소리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높이는 소리가 일종의 방언이 된다.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는 것은 말세가 되면 영을 좇는 게 아닌 육을 좇는 믿음이 많다는 거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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