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부활
마태복음 28:1~20
.
위기의 순간에 남자들보다 여성들이 훨씬 침착합니다.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월등합니다. 왕비 에스더는 민족 공멸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왕의 부름 없이 나가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서도 침착하게 “죽으면 죽으리라”(에 4:16)는 마음으로 페르시아 왕에게 나아가 민족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멸문당한 사울의 첩 리스바는 다윗에 의하여 생때같은 두 아들과 사울의 딸 메랍의 다섯 아들을 기브온족의 억울함을 푼다는 명분으로 죽임당하였을 때 일곱 아들의 시신을 너럭바위에 올려놓고 다윗과 맞섰습니다. 권토중래를 꾀할 여력조차 없는 폐족에 불과하였지만, 다윗으로서는 리스바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리스바의 힘은 비록 약하지만 억울한 자의 호소는 하늘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폭력에 저항하는 끈질김은 권력 그 이상입니다. 결국 다윗은 방치하였던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수습하고 리스바의 아들들의 뼈와 함께 그 조상의 묘에 정중하게 장사지냈습니다. 성경은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삼하 21:14)고 언급합니다. 여인의 힘은 권력 그 이상입니다.
.
성경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가 그린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1799)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어제의 아버지와 오늘의 남편이 일촉즉발의 피 튀기는 전쟁을 치르려는 순간에 사비니 여인들이 그 살벌한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듭니다. 로마의 우두머리 로물루스는 인구 증가가 세력의 확대와 연관이 있음을 알고 이웃 도시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하여 로마 남자들의 아내로 삼게 하고 자신도 사비니 왕 타티우스의 딸 헤르실리아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3년 후 타티우스는 복수를 꾀하려고 로마에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카피톨리노 언덕을 포위하고 로마인들에게 칼끝을 겨누었습니다. 이 다급한 순간에 타티우스의 딸이자 로물루스의 아내인 헤르실리아가 두 팔을 벌리고 아버지와 남편 사이에 서서 전쟁을 중지하고 평화의 길을 가자고 간절히 호소합니다. 다른 여인들도 이에 합세하여 아이들을 번쩍 쳐들고 무리 속에 뛰어듭니다. 인류를 비극으로 몰아넣는 전쟁은 남성에 의하여 자행되고 그 수습과 평화는 여성이 가져옵니다.
.
주님이 고난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실 때 제자들은 제 살길을 찾아 도망가거나 멀찍이 주를 따랐습니다. ‘멀찍이’는 여차하면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겠다는 생각이지만 만일 주님께서 분위기를 반전시켜 로마 군인들과 유대의 앞잡이들을 물리쳐 사태를 역전시키기라도 하면 슬그머니 다가올 심산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달랐습니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님의 고난을 대면하였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 여성들이 가장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습니다. 처음 부활을 여성들이 경험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가부장의 인류 역사에서 숨죽여 지낸 여성에 대한 위로이자 새로운 세상을 향한 문에 첫 손님으로 지목된 것입니다. 이를 영국 화가 찰스 리케츠(1866~1931)가 그렸습니다(1910). 절망과 희망이 대비됩니다.
.
기독교 역사에서 여성의 아름다운 헌신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늘 아랫자리이거나 허드렛일을 합니다. 주목받는 역할과 좋은 자리는 늘 남자들이 차지합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성을 일컬어 마지막 남은 식민지라고 하는데 교회가 딱 그 모습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몹시 서운하실법합니다.
.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죽음을 가장 안타깝게 여기며 슬퍼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부활 소식을 들었듯 우리 시대 고난받는 이들에게 부활 소식이 전해지기를 빕니다.
.
찬송 :160 무덤에 머물러 https://www.youtube.com/watch?v=udADhV3ig4w
그림 : 찰스 리케츠, 제임스 티소
2023. 4. 9 주일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