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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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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예수님의 교훈은 제자들 앞이나 무리 앞에서 교훈의 질이 같다. 그래서 나도 목사님들의 모임에서 하는 설교와 우리 교회에서 하는 설교의 내용이 차이가 없다. 물론 목사님들에게 하는 교육에서 목사님만 듣고 성도들을 들어서는 안 될 말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건 대부분 표면적인 거고 진리에 관한 것은 똑같이 교훈한다.
말씀을 듣는 입장에서 평신도라고 해서 목사님보다 못 깨달으라는 법이 없다. 다만 받는 마음이 준비된 대로 그릇에 따라 받는 은혜가 다를 뿐이다. 어떻게 보면 평신도는 평범한 마음으로 듣지만 목사님은 더 패역적으로 들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깨닫고 만들어지는 자를 돌아보신다.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지옥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지옥이 있느니 없느니’ 말할 필요 없이 성경에서 지옥을 뭐라고 표현하는지 살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나 소원 목적이나 모든 행동은 다 비유다. 비유물들은 사라질 것들이다. 불에 타서 사라지던, 썩어서 없어지던, 땅으로 꺼지던, 먼지가 되던 형체가 없어진다. 젊음도 잠깐이요 늙음도 잠깐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없어질 것을 우리의 영적인 면을 깨닫게 하는 비유로 쓴다.
그런데 없어질 것을 영원히 갈 것처럼 생각하고 욕심을 내면서 신령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면 이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판단 평가를 두고 있는 거다. 이런 사람은 모든 행복이나, ‘참이다. 거짓이다’ 하는 것을 전부 없어질 것에 놓고 살기 때문에 항상 변동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이랬다 저랬다 달라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라서 세상 것을 소원 목적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각도 자꾸 바뀌어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정신이 없겠느냐?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는데, 누가 천국에 가느냐? 예수 믿는 사람, 말씀을 행하는 사람,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사람, 말씀으로 자기 속을 씻는 사람이 천국에 간다. 그러면 지옥은 어떤 사람이 가느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사람이 들어간다. 그러면 뭐가 죄냐? 하나님을 안 믿는 게 죄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한 것을 안 하는 것도 죄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는 것도 죄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말씀을 안 믿고 다른 짓을 하는 것도 죄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는 먹지 말고 생명과를 먹으라고 했는데 선악과를 먹었으니 이것도 죄다. 그러면 이런 죄를 지은 사람은 다 지옥에 가느냐?
교회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이냐? 천국에 가기로 된 사람을 지옥에 안 가게 하는 곳이냐? 천국에 갈 자는 예수님의 피 공로로 얻은 기본구원이 있어서 믿음이 없어도 천국에 간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면 지옥에 가게 되느냐?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은 주님이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는다.
교회는 천국에 갈 사람을 지옥에 가지 않게 하는 곳도 아니고, 지옥에 갈 자를 천국에 가게 하는 곳이 아니라 천국에 갈 자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서 영능의 실력자가 되게 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기쁘고 즐겁게 살게 하는 곳이다. 교회는 비유적으로 예수님의 신부이니 신부라면 주님 다시 오실 때 신랑이신 예수님 보시기에 예뻐야 한다. 교회는 이 일을 하는 곳이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를 보고 ‘처음부터 마귀니라. 나를 팔 자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다 알기 때문에 가룟유다에게 이런 말씀을 한 거다. 그런데 가룟유다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뜻을 모른다. 가룟유다에게 하신 말씀은 믿는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이니 예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한다면 이 사람은 가룟유다다. 예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한다면 이 교인은 예수를 팔 자라, 진리를 팔 자라. 사람을 팔 자라. 가룟유다에게 ‘자기가 갈 곳에 갔다’고 하는 것은 자기 생각대로 행하다가 죽었다는 거다.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처음부터 마귀와 같은 속성을 가졌다는 것을 아신다. 그런데도 이 가룟유다를 불러서 교육을 하신 것은 마귀를 불러서 천국에 보내기 위함이냐? 결국은 가룟유다가 회개했느냐? 안 했다. 사람의 속을 잘 아는 당신은 가룟유다를 불러서 3년 동안 교육을 해도 회개를 못 하고 죽을 것을 다 아시는데 왜 이런 가룟유다를 불러서 교육하신 거냐?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었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한다면 이런 일을 할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신 예수님이 가룟유다를 부른 게 가룟유다를 이용한 후에 지옥에 넣으려고 한 것밖에 더 되느냐?
가룟유다를 등용하신 것은 우리로 가룟유다의 마음과 정신과 소원과 목적을 보고 깨달으라는 건데 교인들이 가룟유다를 보고 깨닫는 것은 없이 가룟유다에게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가 가룟유다보다 나은 게 있느냐? 자기는 돈 욕심이 없느냐?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예수님을 닮았느냐?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면 가룟유다와 같은 정신과 소원 목적을 가지고 있는 자기는 어디에 가는 거냐?
역사적으로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주셨고, 모세로 통해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는데,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깨닫게 하는 거다.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한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믿어갈수록 애굽과 같은 세상의 정신과 소원과 목적에서 멀어지고 자꾸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는 거다. 가는 중에 예수님의 속으로 닮아져야 하는데 세상의 욕심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언제 고쳐지느냐?
광야는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을 상징하고,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는데,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전부가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죽었는데 이들이 어디로 간 거냐? 지옥에 갔느냐? 우리가 예수를 믿다가 이 세상에서 육신이 죽으면 그 믿음은 하나님 앞에 있는 거다. 그러니 천국에 간다. 유대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을 살면서 외국에서 죽은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어디로 간 거냐? 지옥에 갔느냐?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고 하는 식으로 이런 문제를 따지면 지옥에 갔다고 하게 된다. 이건 성경을 잘못 아는 거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때 신성이 졌느냐, 인성이 졌느냐? 이 말 자체가 모순이다. 왜냐?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는 것은 도성인신을 말하는데, 예수님의 육신은 말씀과 나눌 수 없다. 즉 말씀으로 100% 자체화된 분이다. 다른 말로는 신인양성 결합의 일위성으로 오셨는데, 이것은 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왔다는 거다. 그러니 ‘주님이 십자가를 신성이 졌느냐, 인성이 졌느냐?’ 하는 것은 모순된 말이다. 바로 주님이 지셨다고 해야 한다. 교회에서 잘못 배우면 이단성 거짓성 세상성을 주장하게 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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