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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신
민수기 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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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세를 큰 민족의 시조가 되게 하겠다고 한 적이 전에도 있었습니다. 이집트 땅을 떠난 지 삼 개월 되던 무렵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시내산에 올랐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시내산 언약을 맺고 십계명과 율법을 받느라 지체하였습니다. 이때 산 아래에서는 모세의 부재에 두려움을 느낀 무리가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를 출애굽의 신이라며 축제를 벌였습니다(출 32:4). 이를 보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9~10) 하셨습니다. 모세는 출애굽 백성을 진멸하시면 주변 민족들의 웃음거리가 된다며 하나님을 설득합니다.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 32:12 b). 이에 하나님을 뜻을 돌이키사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말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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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 년여가 지난 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출애굽 공동체의 온 무리는 가나안 정탐대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출애굽을 후회하며 환애굽을 획책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그들 앞에 바짝 엎드렸지만 낙담한 무리는 돌을 들어 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행위를 자신에 대한 멸시로 받아들이셨습니다(14:11). 그리고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14:12)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모세의 중재, 또는 중보의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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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자신을 민족보다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이 있어야 자기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성의 처사가 마뜩잖고, 하나님의 의지가 옳지만 모세는 자신에게 돌을 들기까지 한 백성 편에서 하나님을 설득하고 호소합니다. 지도자란 이런 존재입니다. 오늘 민족과 역사 없이 존재하는 양아치 같은 정치 지도자를 보면 한심합니다. 간은 일본에게 빼앗기고 쓸개는 미국에게 주어버린 꼴사나운 리더십이 민족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자존감도 줏대도 없는 이들이 벌이는 단막극이 어떻게 끝날지 불안합니다. 믿음직한 지도자의 부재를 걱정하다가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군주들은 지나치게 분별 있는 자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예컨대 카이사르가 술주정뱅이인 안토니우스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경계한 것처럼. 네로 황제는 세네카를 믿지 않았고, 디오니소스는 플라톤을 의심하였다. 이는 폭군들이 무식하고 통찰력 없는 자들만 좋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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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합니다.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14:19). 여기서 하나님의 용서 속성을 봅니다. 하나님은 존재론적으로 용서하는 분이십니다. 15세기 프랑스 화가 장 푸케(1420~1477)가 그린 <페라라 궁정 어릿광대 고넬라>(1445)와 겹쳐집니다. 하나님은 용서밖에 할 수 없는 운명적인 신이십니다. 출애굽 후 1년여를 지나며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내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용서만 하는 바보 신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중보자가 있을 때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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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 삶의 행위대로 보응하지 않고 오래 참아주시고 넉넉히 용서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남은 삶도 함께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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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286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https://www.youtube.com/watch?v=A-asPSk9Z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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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장 푸케 <페라리 궁정의 어릿광대 고넬라> 부분, 1445, 나무에 유채, 36×24cm, 미술사박물관,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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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16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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