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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십자가의 길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연옥 편에는 커다란 바위에 짓눌려 허리가 굽은 인간이 나옵니다. 영원히 땅만 보는 벌을 받은 것이지요. 그들은 무슨 죄를 범한 것일까요. 교만입니다. 뻣뻣한 허리로 위만 보며 살았기에 굽은 허리로 아래만 보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이야말로 모든 죄의 어미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겸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수난을 예고하시지요. 그렇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처음 수난을 예고하시자 베드로는 안 된다며 예수님께 항의하지요.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셨을 때는 누가 더 크냐며 다툽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 후에는 급기야 자리다툼까지 벌어집니다. 이토록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모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분명하게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왜 청맹과니처럼 도무지 못 듣는 것일까요. 무엇이 귀를 막고 눈을 가린 것일까요. 교만입니다. 그들은 누가 더 높으냐며 높은 곳만 바라보았습니다. 교만한 눈으로는 십자가의 길을 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하며 가는 길입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겨자씨/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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