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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민중봉기
민수기 1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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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질서 사회에서 시민은 사회와 역사 발전의 동력입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에서 보듯 시민은 절대주의와 봉건주의를 무너뜨리는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비록 프랑스대혁명이 영국의 명예혁명(1688)에 비하여 100년이나 늦었지만 이제 유럽 사회에서 시민의 힘, 그것이 비록 소수의 부르주아라 하더라도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사회에서 태동한 계몽주의 바람이 대혁명을 가능하게 하였고 미국 독립혁명(1775~1783)을 성공시켰고, 유럽 사회를 전과 다른 세상으로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계몽주의의 승리입니다. 계몽주의를 한마디로 하면 “감히 알려고 하라”(스티븐 핑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유럽을 지탱한 군주, 또는 종교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가치관, 그것도 개인을 중시하는 방향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물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성을 이용하고, 과학을 활용하는 휴머니즘 시대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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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계몽주의의 훈훈한 봄바람을 느끼며 세상이 바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백성 위에 군림하던 절대군주 루이 16세는 힘을 잃었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종교도 전처럼 마냥 힘 자랑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민은 이제 좀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그랬습니다. 도리어 더 광포한 세상이 찾아왔습니다. 대혁명 이후 왕당파와 의회파가 갈등을 빚더니 로베스피에르(1758~1794)가 이끄는 자코뱅당 혁명정부는 수십만 명의 시민에게 반혁명파의 허울을 씌워 기요틴에 세우는 공포정치를 자행하였습니다. 프랑스는 절대왕정 시대보다 더 혼탁하고 어두웠습니다. 결국 ‘자유를 위해 자유를 없앤’(한나 아렌트) 로베스피에르는 동료들에 의하여 체포되었습니다. <로베스피에로의 몰락>(1870)을 독일 화가 막스 아다모(1837~1901)가 그렸고, <단두대로 떠나는 로베스피에르>(1884)를 19세기 프랑스 화가 알프레드 무이야르가 그렸습니다. 앙시앙 레짐(구시대)을 청산하고 새 세상을 열었으나 준비되지 않았던 탓에 무고한 피를 흘리고 갈등만 겪다가 결국 나폴레옹(1769~1821)에게 황제의 관을 씌우므로 죽 쒀서 개 준 꼴이 된 셈입니다. 그때 그들만 아니라 지금 우리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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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공동체에 모세의 지도력에 대한 반발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난하였는데(민 12장) 이번에는 레위 지파의 고라가 주동이 되어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에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과 온도 가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유력한 250명도 함께 하였습니다. 제법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었을뿐 아니라 그들의 명분도 일리 있어 보입니다. “당신들은 분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소. 온 회중 각자가 다 거룩하고, 그들 가운데 주님께서 계시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은 주님의 회중 위에 군림하려 하오?”(16:3 새번역) 그럴 듯 해보이지만 성경은 이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26:9~11, 27:3, 신 11:6, 시 106:16~18). “화 있을진저 …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유 1:11). 지금도 패역한 무리는 여전합니다. 시민에게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이 있습니다. 새 세상을 여는 동력도 되지만 역사의 퇴행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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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땅의 시민에게 깨어있는 의식을 주십시오. 이제 여기를 살고 있는 하나님 나라 시민에게 공의와 평화의 하늘을 살 믿음과 용기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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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42 너 시험을 당해ehttps://www.youtube.com/watch?v=jZS3R2ec5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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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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