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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도자란?
민수기 16: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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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에게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역사 발전의 동력이 되는가 하면 역사 퇴행의 힘도 백성에게서 나옵니다. 우리 민족의 평화와 일치는 깨어있는 시민의 몫입니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일도 시민이 합니다. 이는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문제이고, 이타적이고 미래 지향의 가치관과 자기 욕망에 복무하려는 이기적 탐심의 문제입니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삼천오백 년 전 출애굽 한 이스라엘 공동체도 이 문제로 속앓이가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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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16:41).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었음에도 제 잘못을 성찰하기는커녕 고라의 반역에 역성을 드는 아둔한 백성이 보기 딱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아전인수입니다. 죽임 당한 이들은 하나님의 질서와 구원 역사를 뒤집는 역모에 가담한 아들로서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말하기에 머뭇거려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멸시하다가 땅이 갈라져 죽고, 분향하는 불이 살라 죽었습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얼마나 견책을 더 받아야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거룩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요? 종교를 권력화하려는 고라 무리에 대한 심판이 있었지만 무지몽매한 이들의 반역은 여전하여 모세와 아론을 규탄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백성에 대한 재앙으로 염병을 일으켰습니다. 그렇게 하여 염병으로 죽은 자가 ‘만 사천칠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수는 1차 인구조사의 통계인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 인구의 2.4%에 해당합니다. 결코 작은 수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코로나-19 발생 후 현재까지 사망률이 0.11%에 비한다면 매우 높은 사망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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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아론은 또 엎드립니다(14:5, 16:22, 45). 지도자란 하나님 앞에뿐만 아니라 백성 앞에도 엎드리는 자입니다. 백성을 아래로 내려 보는 이는 무자격 지도자입니다. 왕조시대도 그러하지만 지금 같은 민주 질서 사회에서 지도자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시민을 계몽의 대상으로만 여겨 가르치려고만 하는 것이 바로 독재입니다.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박정희가 다 그런 길을 걸었습니다. 비록 시민에게는 긍정과 부정, 발전과 퇴행의 양면성이 있지만 대화와 타협의 상대로 인정하여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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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아론은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고 엎드렸습니다. 화는 하나님이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치솟는 불길같아서 이스라엘 온 무리를 염병에 죽게할지도 몰랐습니다. 속죄의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워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16:46). 아론은 속히 백성 가운데 들어가서 속죄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아론이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서니, 재앙이 그쳤다.”(민 16:48 새번역). 종교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는 행위입니다. 목자의 마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이런 지도자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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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반대자를 멸망에서 구원하고 사랑으로 보듬는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을 흠모하며 배우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 시대 지도자의 모습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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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257 마음에 가득한 https://www.youtube.com/watch?v=s8XlTy0sE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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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http://www.graceandknowledge.net/ 에서 캡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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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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