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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거룩한 음식
민수기 1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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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텃밭에 심은 푸성귀의 가장 처음 것과 가장 좋은 것을 목사님 사택으로 보냈습니다. 뜰에 심은 포도나무에 열매가 열리면 가장 먼저 딴 실한 것을 골라 사택에 올려보냈습니다. 우리 집은 내가 중학생일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기름 등잔을 썼습니다. 학교 다녀오면 으레 연기에 그을린 호야 닦는 일은 어렸을 적부터 내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궁한 시절이었는데도 아버지는 목사님 사택에 냉장고를 사드렸습니다. 30대의 목사님과 사모님이 어린 두 딸과 함께하는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해드리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깊게 연구하고, 좋은 목자로서 교인들을 잘 돌보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도 목회 초년기에 그런 은혜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내 복장이 추레해 보였는지 권사님 한 분이 ‘양복 한 벌 맞춰 입으세요’는 말씀과 함께 봉투에 50만 원을 담아주셨습니다. 30년쯤 전이니 그 돈이 보통 큰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권사님이 생활에 여유가 있는 분도 아니셨습니다. 달동네 단간 방에서 하루 두 끼 식사로 근근한 삶을 이으시는 분으로부터 그런 은혜를 입으니 참 난감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세상을 뜨셨지만, 문산옥 권사님의 그 마음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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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했습니다.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며 기도를 무기 삼던 앞세대 목회에 비하여 목회 환경에 변화가 큽니다.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의 극진한 대접과 섬김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어렵고 힘든 목회 현장을 버텨내야 하는 외로운 목회자들도 여전합니다. 대리기사를 하고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목회적 소명을 이루려는 가슴 뜨거운 일꾼들이 많습니다. 극심한 부의 양극화 현상은 교회 안에도 극심합니다. 공교회 의식은 미미하여 자립에 이르지 못한 교회와 목회자의 고통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18:19)신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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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는 ‘성미’ 제도가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밥을 지을 때마다 한 수저씩 따로 모아 두었던 쌀을 주일에 가져와 목회자의 식량이 되게 하였습니다. 목회자의 삶을 걱정하는 교인들의 십시일반 마음입니다. 보리밥을 먹던 시절에 성미는 목회자의 좋은 식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좋은 쌀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성미는 이 쌀 저 쌀 섞인 혼합미에 불과하여 밥맛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자연히 성미는 구제미와 교회 행사에 사용되었습니다. 밥맛이 변한 게 아니고 시대가 변한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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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초년기에 집에 오신 아버지가 성미로 지은 밥을 드시면서 ‘목사는 이런 밥을 먹어야 해’라시던 때가 생각납니다. 자신이 섬기던 목사님에게는 첨단가전제품을 설치해주던 분이 아들 목사에게는 딴청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속내를 이해하고 긍정합니다.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꼭 일곱 해가 되었습니다. 풍요와 편리에 길들여진 아들의 등짝을 내리치는 죽비입니다. 거룩한 음식보다 기름진 음식이 좋아지는 시대여서 갈 길이 참 멉니다. 독일 인상주의 화가 막스 리버만(1847~1935)이 종이에 목탄과 분필로 그린 <저녁 식사하는 농민들>이 생각납니다. 목회자란 기름진 음식을 먹는 자가 아니라 거룩한 음식을 먹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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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경제의 궁핍으로 고통당하는 교회와 목회자에게도 주님이 분깃이 되어 주십시오. 거룩한 음식을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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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435 나의 영원하신 기업 https://www.youtube.com/watch?v=GJwSx4fq4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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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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