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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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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개입하셔야…
민수기 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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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은 여간해서 그치기가 어렵습니다. 삶을 긍정하고 자유를 지향하는 이들은 어지간한 어려움과 불편이 있더라도 더 귀한 가치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대가라고 생각하며 어려움을 이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뿌리 깊은 노예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작은 일에 쉽게 무너지며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뒤로 되돌아가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역사란 앞으로 나아가는 무리와 겁에 질려 뒤로 돌아가려는 무리의 충돌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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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이후 백성의 불순종과 반란은 줄을 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을 때 산 아래의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야말로 출애굽의 신이라고 광란해 마지않았습니다(출 32:1~4).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에 섞여 사는 무리가 만나에 만족하지 않고 고기와 생선과 채소와 양념이 그립다며 일으킨 반란도 있었습니다(11:4~6). 뿐만 아니라 지근거리에서 모세의 힘이 되었던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향하여 등을 돌리기도 하였습니다(12:1~2). 또 가나안 정탐대의 보고를 듣고 낙심하여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무리들이 일어났습니다(14:1~1~4). 레위 지파의 고라가 중심이 되어 조직적으로 반역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16:1~3). 산 넘어 산이고 물 건너 물이었습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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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일제강점기 그 수탈의 역사를 굴욕으로 보기보다 근대화의 기초로 보는 이들은 지금 우리 가운데에도 여전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옛날이 좋았다’는 이들은 지금도 독재시대와 일제강점기와 중국에 기대어 살던 때를 그리워합니다. 그에 비하여 과거를 어둠의 역사로 인식한 이들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고단하지만 전진의 고통을 감수하자고 합니다.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릎을 꿇으라는 것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자의 말입니다. 무지한 역사 왜곡의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속내가 신박합니다. 골빈당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를 지지하는 시민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에게 맡긴 시민의 권리를 빨리 회수하지 않으면 더 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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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20:3). 이스라엘 백성이 또 불평하였습니다. 물이 없어서입니다. 그들의 불평은 도를 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20:5) 이는 출애굽의 주체이며 광야의 인도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불평이자 반역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회막 문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나서야 하실 때입니다. 오늘 이 나라와 민족에도 주님이 나서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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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세에게 바위를 향해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셨습니다(20:8). 그런데 모세는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이나 쳐 물을 내었습니다(20:10). 백성의 불평에 관대하신 하나님은 모세의 이 행위를 불순종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은 약속의 땅 진입을 금하셨습니다. 네덜란드 황금기의 화가 얀 하빅스존 스톤(1626~1679)이 이를 그렸는데(1648~1652) 바위를 치는 모세의 모습이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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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불평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감사입니다. 부지불식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죄를 뉘우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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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84 눈을 들어 산을 보니 https://www.youtube.com/watch?v=TFDYok-Md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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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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