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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사명의 승계
민수기 20: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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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20:17). 모세가 에돔 왕에게 정중하게 부탁하였습니다. 모세는 에돔과 이스라엘 관계를 형제로 인식하며 그동안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굴욕의 종살이하였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민족의 고통과 신음을 들으신 하나님이 출애굽의 역사를 펼치셨다고 소개합니다(20:14~16). 에돔은 에서의 후손이니 이스라엘 민족의 이런 부탁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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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에돔 왕은 이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형제 민족이었지만 형제 의식은 빛이 바랜 지 이미 오래였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였지만 반목과 대립으로 일관하였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에돔 입장에서는 국제 질서상 유익도 없고 경제적 이익도 없으니 굳이 이스라엘에게 호의를 베풀 이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자기 나라의 안전은 이웃 나라의 번영과 반비례하기 마련입니다. 국경을 마주하는 나라끼리 사이좋은 경우가 드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후에 사울과 다윗은 에돔을 정복하였고 솔로몬은 에돔 땅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건조하였습니다(왕상 9:26). 이스라엘이 분열되어 국력이 쇠약하자 에돔은 기회있을 때마다 유다를 배신하고 괴롭혔습니다. 국경을 맞댄 나라 사이에 상대의 국력과 평화는 반비례한다는 말이 정확합니다. 만일 이때 에돔 왕이 길을 열어주고 이스라엘을 선대하였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요? 적어도 이웃 나라 사이에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신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우리나라와 일본이 과거 역사와 영토와 관련하여 서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서 신기원의 역사를 펼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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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재차 “우리가 큰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20:19) 청하였으나 에돔 왕은 군대를 거느리고 맞아 싸우러 나왔습니다. 할 수 없이 이스라엘은 먼 길을 에둘러 돌아가야 했습니다. 상대를 진정성으로 설득하지 못하면 가까운 길을 질러갈 수 없습니다. 진정성이야말로 인생과 역사의 밑절미입니다. 역사와 삶에 가정은 없지만, 공생과 평화에 터한 진정성이 인생과 인류와 역사에 가능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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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의 광야 생활은 거의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이는 출애굽 1세대의 퇴장을 의미합니다. 미리암에 이어 한 시대를 풍미하던 지도자 아론이 죽자 모세는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 입혀 대제사장의 직임을 승계하였습니다. 퇴장과 등장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떡잎이 떨어져야 자라는 식물의 원리는 역사의 순리이기도 합니다. 앞 시대가 가야 새 시대가 옵니다. 앞 시대가 퇴장을 거부하고 버티면 역사 발전은 더디고 미래 시대의 희망은 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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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홀로 생존하는 정글 법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진정성을 추구합니다. 목회 정년을 맞는 제게 사명을 잇는 은총도 더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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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75 나는 갈 길 모르니 https://www.youtube.com/watch?v=3kmEp520U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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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30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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